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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피자 좋아해?
좋아하지, 물론. 난 옆구리를 두텁게 하는 모든 음식을 좋아해. 나는 이슬 때문에 축축해진 풀밭에 누워서 그 질문에 답했다. 삼겹살? 곱창? 치킨? 그래. 그 모든 것. 다 좋아. 아주 환장을 하지. 그렇구나. 좋아하는구나. 그런데 나는
누구에게 질문을 받고 있는 걸까. 몸에 붙은 풀을 털어내며, 나는 상체를 일으켰다. 질문이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는 멍청해 보이는 새가 앉아있었다. 그 둥그런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내가 좋아하던 무언가를 닮은 공백 같은 눈이었다. 그러니까,
피자 좋아해?
좋아해, 이 새대가리야. 그래. 그렇구나. 그렇게 말하며, 새는 마지막 남은 피자 한 조각을 부리에 집어넣었다. 그런 질문을 하기에는 꽤 부적절한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니, 씹새야. 나는 새에게 물었다. 새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새 내 시선은 저절로 새 앞에 놓인 피자 판을 향해 떨어졌다. 내 모습을 본 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피자 좋아하는구나.
뭐 이런, 잡놈이 다 있어. 나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그 엿 같은 새를 바라보았다. 기억하기로, 그 새는 굉장히 유명한 새였다. 저 새가, 저 새는,
그 새는 도도였다. 칠면조 같은 몸매에 얼빠진 얼굴을 한, 도도였다. 내가 뚫어지게 바라보자 도도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곧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에 도도는 날개 밑을 뒤적거려서 음료수 캔을 하나 꺼냈다.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도 가지 않는 놀라운 솜씨로 도도는 캔을 땄다. 그리고는 부리 사이에 끼우고 시원하게 들이켰다. 써니텐 치즈 아이스크림 맛이었다. 별 해괴한 걸 다 마시는구나.
나도 좀 줘. 그러자 도도는 캔을 풀밭에 내려놓고는 말했다.
써니텐 좋아해? 아, 그래. 익숙한 대화에 나는 그만 질려버렸다. 나는 그저 도도가 남은 음료수를 다 마셔버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도는 빈 깡통을 휙 집어던지고는 트림을 한 번 하고 방구를 한 번 뀌었다. 뿌왁! 그러고는 도도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길거리에서 바바리맨을 마주친 것만 같은 기분에 빠져들었다. 미친 놈 마냥 그 미친 광경을 30초쯤 넋 놓고 바라보았다. 도도는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나도 피자 먹고 싶어. 염병할 새끼야. 그 솔직한 폭언에도 도도는 화를 내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춤을 멈추고 또다시, 제기랄,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대로 10분쯤 지나면 저 망할 놈의 새를 깃털 째 뜯어먹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정적이 흘렀다. 다행히 2분 정도 지나서 도도는 부리를 열었다.
따라와. 피자 먹자.
그 말에 나는 도도의 영도력에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피자라는 이름의 포켓몬스터가 된 것처럼 나는 피자를 뇌까리며 도도의 뒤뚱거리는 뒷모습을 쫓아갔다. 피자!
도도는 뒤뚱거렸지만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빠르게 달려갔다. 옆구리가 아프다. 빽빽한 녹림을 통과한 도도는 까마득히 높이 솟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108계단이라도 되는 듯했다. 보기만 해도 탄식하게 되는 높이였다. 피자 하나 먹자고 이 짓거리를 해야 하나?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나는 도도를 따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은 가파르고 폭도 좁아서 도무지 속도를 내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도도는 그 짧은 다리로 용케도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반 정도 올라갔을 쯤에서는 지친 나보다도 월등히 빠른 속도로 계단을 올랐다. 이윽고 도도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정상에 오른 모양이었다. 하나 둘, 하나 둘, 계단을 오르고, 피로감에 거의 무아지경이 되었을 때
나는 바위 봉우리의 정상에 도착했다.
4.
정상은 마치 인공적으로 깎아놓은 듯 평평했다. 솔직히 말하면, 매우 쾌적한 곳이었다. 계단을 108개나 올라왔던 피로가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탁 트인 파란 하늘 아래로 녹색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솔직히, 장관이었다. 무엇인가를 이토록 솔직하게, 멋지다고 말해본 것이 언제쯤이었던가. 가물가물했다. 파란 하늘로 흩어지는 구름처럼.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데
피자는 어디 있어. 나는 도도에게 따지듯 물었다. 도도는 엉덩이를 깔고 털푸덕 주저앉았다. 나도 그렇게 했다. 이제 도도가 핸드폰을 꺼내서, 피자를 시켜주는 건가? 도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또 다시, 써니텐을 꺼냈던 것처럼 날개 밑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날개 밑을 뒤적거리던 도도는 담뱃갑 비슷한 크기의, 하지만 조금 더 길쭉하게 생긴 종이 상자를 꺼내서 땅바닥에 툭 내려놓았다. 익숙한 물건이었다. 그것은 타로 카드 상자였다. 이건 또, 뭔 개수작이야. 나는 도도가 하는 짓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도도는 신비로운 동작으로 타로 카드 상자를 열어 엄숙하게 섞기 시작했다. 내가 항상 해왔던, 사기 행위를 시작하는 동작이었다. 피자는 어디 있냐고. 도도는 내 말을 무시했다. 묵묵히 카드를 섞을 뿐이었다. 카드를 다 섞고 도도는
타로 점 좋아해?
밥벌이 수단으로서도, 취미로서도 좋아해본 적이 없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구나. 도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로 점 봐줄게. 그런 거 필요 없다. 나는 피자를 원했다. 동의를 한 적이 없지만 도도는 멋대로 나에 대한 타로 점을 봐주기 시작했다. 잘 섞은 패에서 도도는 카드를 세 장 꺼내어 자기 앞에 나란히 깔아놓았다. 야매였다. 아무리 간편하고 강력한 도구라지만, 저렇게 점을 치는 것은, 정말 야매였다. 문득 나는 점을 봐주는 사람이 17세기에 멸종한 멍청한 새라는 것을 상기했다. 그래, 새대가리구나. 그래서 그냥 어떻게 하는지 내버려두기로 했다. 도도는 제일 왼쪽의 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카드는 네가 가장 욕망하는 것을 보여주는 카드야. 그러고는 도도는 카드를 뒤집었다. 피자였다. 대체 무슨 카드를 가지고 점을 치는 거야. 하지만 정확했다. 나는 그 카드를 낚아채어 와구와구 씹어 먹어버렸다. 도도는 그것을 제지하지 않았다. 내가 입안에 든 것을 꼭꼭 씹어 삼키는 것을 도도는 묵묵히 지켜보았다. 저작운동이 끝나자 도도는 다시 타로 점을 진행했다. 이 카드는 네가 현재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카드야. 도도는 그렇게 말하며 내가 먹어버린 카드 다음에 있는 카드를 뒤집었다. 그것은 탑이었다. 번개를 맞아서 무너지는. 호오. 호오오. 도도는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호오오오. 너는
망했어. 도도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망했다고? 그래. 망했어. 도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망했어. 어이가 없었다. 17세기에 멸종당한 새가 내게 파멸을 선고한 것이다. 어이가 없을 만하지 않은가? 지랄하고 자빠졌네. 내가 망했다고? 내가 네 점을 봐주마. 하며, 나는 또 카드를 낚아챘다. 그리고는 그것을 도도에게 들이밀었다. 이게, 너야. 내가 아니라 너라고, 이 엿 같은 새 놈아. 너희는 수백 년 전에 멸종당했어. 네 엄마도 아빠도 형제도 다 죽었어. 날지도 못하는 너희 병신들을 사람들이 와서 총을 쏘고 몽둥이로 패서 죽였지. 사람들과 함께 온 쥐들이 네 아들과 딸들이 될 알들을 다 훔쳐 먹었어. 너희는 막을 수도 없었고 심지어 날아서 섬을 떠날 수도 없었지. 너흰 눈 뜨고 그 모든 걸 당한 거야. 이 병신 같은 새야, 사기는 너 같은 도도가 치는 게 아냐. 사람이나 쥐쯤은 되어야 칠 수 있는 거야. 이게 너야! 짝.
도도의 날개가 내 얼굴을 후려쳤다. 전광석화였다. 나는 앉은 자세에서 돌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광대뼈가 부러질 것만 같은 충격에 나는 그만 얼이 빠져버렸다. 나는 얼굴을 부여잡고 새 눈깔처럼 동그래진 눈으로 도도를 바라보았다. 도도는 여전히 특유의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도는 바닥에 깔린 마지막 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너야. 도도는 그것을 뒤집었다. 시선이 카드에 번개처럼 날아가 꽂혔다. 그것은 도도였다. 나는 카드에 그려진 새와 내 앞에 있는 멍청하게 생긴 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잠깐의 침묵 후, 도도가 말했다.
병신.
그리고 도도는 뒤돌아서 봉우리의 가장자리로 뒤뚱거리며 걸어갔다. 그리고 짧은 날개를 펼치고 뛰어내렸다. 도도는 날지 못한다. 도도가 허공에 몸을 던지고서 단 1초도 중력을 이길 수 없었다. 도도는 추락했다. 비명 소리 같은 것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가서 도도가 남긴 그 카드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여전히 도도가 있었다. 내가?
나는 추락했다.
5.
나는 눈을 떴다. 식은땀이 온 몸을 적시고 있었다. 나는 이불을 걷어 차버렸다. 뭐 이런, 개꿈, 아니 새꿈을. 핸드폰 시계를 보았다. 아침 6시였다. 슬슬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일어나서 씻어야 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순간이다.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배를 벅벅 긁으면서, 걸음마를 막 시작한 갓난쟁이 마냥 어기적어기적 몸을 일으켰다. 바로 그 순간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는 캔버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림은 언제 그리나. 그래 어쩌면
지금.
와 진짜 잘 쓰셨다.
죄책감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