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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고기
노원우
1.
물고기가 바람 속에 누워있다. 눈꺼풀이 없어, 그의 눈동자는 마냥 동그랗기만 하다.
표정이 있다고 해야 할 지 없다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유리조각들이 물고기 주변
에서 반짝반짝 팔딱거린다. 싱싱하게, 구슬프다.
물고기는 아가미를 벌렸다 닫았다, 하, 하아 - 하, 하, 하아 - 하고, 숨을 쉰다. 아니,
쉬려고 애쓴다. 하, 하아 - 하, 하, 하아 - , 한참 허리를 뒤틀다 만 직후였다. 그저
이제는 다 귀찮다는 듯, 그 동그란 눈으로 천장을 쏘아보며 그냥
하, 하아 - 하, 하, 하아 -
이쯤에서 그는 감을 수 없는 자기 눈에 불만을 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람을 들이키
던 물고기는 힘겹게 고개를 비튼다. 나를, 노려본다. 노랗고 동그란, 왼쪽 눈만을 가지고,
반쪽의 얼굴로 내 전부를 노려본다. 그리고 말했다.
씹
그리고 그의 숨은 끊어졌다.
하아 - 하.
2.
영희에게 혼났다. 물고기가 눈도 못 감고 죽은 다음 며칠 뒤였다. 오랫동안 집을 비웠던
영희는 지친 모습이었다. 박살난 채 거실에 어질러져 있는 어항을 보고 영희는 통조림따
개처럼 짜증을 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야 원래 말을 못하니 어쩔 수 없었
다. 다만 나는 영희가 어항을 깬 것에만 화를 내는 것이 좀 의아스러웠다. 그보다 영희
야 - 물고기가 죽었어. 나는 그렇게 알리고 싶었다. 물고기는 며칠 새 바닥에 흩어진 어
항 물과 함께 바짝 말랐다. 꼭 마른 멸치처럼, 맛있고 처참했다. 내가 물고기를 먹은 게
이렇게 후회가 될 줄은 몰랐다. 유리를 치우며, 영희는 삐그덕거리는 한숨을 내쉰다.
하아 - 하.
3.
우리 집 물고기가 죽었어.
그 - 래 - 애?
그래.
그렇구나.
우리 집 물고기가 죽었다는 소식에 나비는 별로 감흥이 없어 보였다. 나비는 평소와 똑같
이 담장 위에 앉아 개다래 풀에 코를 처박고 있었다.
물고기라면, 난 매일 먹어.
아, 이건 … 좀 충격이다. 그래서 나비가 그렇게 뚱뚱하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하
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살아있는 거를?
몰라, 깡통에 든 거. 깡통에 든 건 살아있는 거야, 죽어있는 거야?
죽은 거야.
그렇구나. 아무튼 맛있어.
나비는 정말 물고기는 맛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비는 물고 기 같은 건 완전
히 잊어버린 표정으로, 개다래에다가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하아 - 하.
4.
영희는 새 어항을 사왔다. 내가 밀어도 꿈쩍도 안할 만큼, 크고 무거운 어항이었다. 영희는 끙끙거리고
어항을 들고 와서는, 거기에 전등을 달고, 물을 넣고, 약을 풀고, 거품이 나오는 그걸 넣고
물고기를
넣었
다
풍덩. 저번의 물고기하고는 많이 다르게 생긴, 물고기였다. 물이 담긴 봉투에서 떨어진 물고기는 입을 뻐끔,
뻐끔거리면서, 유유히 헤엄쳤다. 물고기는 예뻤다. 계속 움직였다. 춤추는, 무지개 같다. 밝기가 조금씩 제
각각인, 보라, 파랑, 초록, 노랑 줄무늬가 네 개 - 그리고 춤춘다. 나는 멍하니 어항 속의 물고기를 바라본
다. 물고기를 따라, 기울면서. 물고기가 바람이고
내가 갈대 … .
“예쁘지? 관상용 잉어라는 거야, 리안.”
영희는 내게 말한다. 혼자 사는 그녀의 버릇이었다. 나는 멀뚱히 영희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어항 족으로 고개
를 돌렸다. 알아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영희는 시시때때로 내게 말을 걸었다. 영희의 말 중에서 ‘리안’
이라고 하는 그게, 날 부를 때 쓰는 말이라는 걸 빼놓고는 알아듣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계속 어항 속의 물고
기만 바라보는 나를, 영희는 번쩍 안아들었다.
아 - 싫어, 놔줘. 싫어.
영희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뭔가 나직하게 말했다. “밥 먹자.” 영희의 품에 안겨 있으니, 영희의 작은
숨소리가 귓가에 찰랑인다.
하아 - 하.
5.
“어, 고양이 길러? 언제부터 기른 거야? 말하지 그랬어, 구경도 오고 그랬을 텐데. 먹을 것도 좀 사주고.”
“이제 겨우 한 달 됐어.”
“귀엽다 - 털이 전부 하얗네. 이름이 뭐야?”
“리안.”
“리안? 어디 판타지 소설에서 나오는 이름이야?”
“어 … 뭐 그렇지.”
아침부터 시끄럽다. 거실의 소파에서 기분 좋게 자고 있는데, 끊임없이 재재재재 거리는 목소리에
잠이 다 달아난다. 도망쳐! 목소리야! 잠이 외친다. 꼬리를 자르고 남겨둔 채 숨어버린다. 그 꼬리
때문에 나는 깨고서도 여전히 졸음이 가시질 않는다. 그렇지만 저 재재재재 거리는 목소리가 내 잠
을 노리고 달려드는 통에, 도저히 잘 수가 없다. 나는 졸린 눈을 억지로 뜨고 방을 둘러본다. 영희
와 함께 웬 낯선 사람이 서서 날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는, 또 다시 재재재재.
“와, 눈은 또 빨가네. 알비노 같아. 종이 뭐야?”
“몰라. 주워온 거거든.”
“그렇구나 … .”
재재재재.
재재 거리는 그 사람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든다. 졸린데 만지는 게 짜증나서 그 재재
거리는 여자의 손을, 할퀴어 버린다. ‘앗’소리를 내며 여자는 손을 감싸 쥔다. 피는 안 났을 것이다.
쓰다듬듯 할퀴었으니. 입을 벌리고 찢어지게 하품을 한다.
하아 - 하.
6.
어항 속의 무지개를, 오늘도 그냥 멍하니, 정말 멍하니 바라본다. 무지개는 물고기다. 맛있어 보여서도
아니고 재밌어 보여서도 아니고, 대체 왜 나는 무지개를 매일 바라보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뭔가
따스해서
그러니까, 가슴께에서 기지개를 켜는 불꽃처럼, 따스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무지개를 바라보면, 어째서인지
따스해졌다. 물속에 있는 무지개는 따스함을 알까?
도무지 모르겠어
영희는 또 집을 나갔다. 매일 이렇게 나가게 된지 얼마나 지났는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아침 해가 한, 일
곱 번쯤, 그리고 다시 저녁 해가 일곱 번쯤 뜨고 졌던 것 같다. 오래 되었다. 영희는 매일 나가게 된 게 즐
거워 보였다. 이상했다. 영희는 가만히 멈추어 있는 걸 더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와 반대로 밖에 나가기
를 좋아했던 나는, 무지개 앞에 가만히 앉아있기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어항 속의 무지개를 보았고
영희는 밖에서
무지개를 본 것일까? 그저 알지를 못해서 숨만 들이쉬기를
하아 - 하.
7.
나비가 죽었다. 언젠가 개다래가 나비를 죽이지는 않을까, 했는데 생각 외로 나비는 물고기 때문에 죽었다. 늘
먹는다는 그 물고기를 먹고, 나비는 물고기처럼 죽었다. 이상하다.
저거 맛있어 보인다. 안 먹을래?
난 싫어.
나비는 그렇게 그 물고기를 먹었고, 나는 곁에서 구경만 했다. 죽은 물고기였다. 그리고 곧 그 물고기는 죽인 물
고기가 되었다. 나비는 먹성 좋게 물고기를 먹어치웠고, 조금 후에는 자기가 물고기라도 되는 양 물을 찾기 시작
했다.
물. 물. 물. 물. 물. 물.
왜 그래?
물!
목말라?
물!
그리고는 바닥에 자빠져 몸을 펄떡 거렸다. 정말 어항을 깬 그날의 물고기를 보는 것 같았다, 멸치가 되어버린
그 물고기. 나비도 멸치가 되는 걸까? 나비는, 점점 힘이 빠지는 듯 했다. 정말 물고기처럼, 나비는 더 이상
바람 속에서 숨을 쉬지 못했다. 기분이 나빠져서 나는 나비를 소리 내어 불렀다.
나비야 - (“야옹.”)
나비야 - ? (“야오옹.”)
나비를 도와주고 싶었다. 나비를 물에 넣어줘야 한다 -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작았고, 나비는,
너무 무거웠다. 도무지 옮길 수가 없었다. 머리로 나비의 배를 밀어 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웅덩이 근처
에 겨우 도착한 그때, 나비는 이미 멸치처럼 굳어 있었다. 나비는 물고기가 되었다. 죽은, 물고기였다. 나비
의 뭉툭한 코에서 마지막 바람이
하아 - 하.
8.
하늘빛이 어둡게 푸르스름해질 때 쯤, 집에 돌아왔다. 한참을 울고 난 뒤였다. 영희가 창문을 닫아놓아서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영희를 부르면서 (“야옹”) 창문을 박박 긁었다. 발소리가 커진다. 영희다. 창문이 드르륵 열
리면서 영희가 팔을 내민다. 뭔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황급히 영희의 팔에 감겼다. 밖에 있기가 왠지
겁이 났다.
“어휴 - 어디 갔었어.”
영희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 눈을 감고 그르릉거린다. 드르륵, 영희는 창문을 닫고 나를 소파 위에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터벅터벅 부엌으로 걸어간다. 나는 따라 일어나서는 영희를 쫓아 달린다. 앞발로 영희의 다리를 콱 붙
잡는다. 놀라서 멈춘 영희가 날 의아한 눈으로 내려다본다. 나는 영희의 다리에 몸을 부빈다.
“웬일이야? 애교를 다 부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죽은 나비가, 죽은 물고기가 반쪽짜리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던 그 광경이 나를 계속 괴롭
혀서 그랬다. 영희는 나를 쓰다듬다가, 부엌 찬장에서 뭔가를 꺼내었다. 영희는 그걸 접시에 담아서 내게 내민
다. 그건
물고기
였다. 당연히, 먹지 못했다.
하아 - 하.
9.
무지개가 살이 쪘다. 잔뜩, 쪘다. 더 이상 무지개 같지를 않았다, 라기 보다는 그건 나비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는 없었다. 살찐 모습이 정말 딱 나비와 똑같았다. 개다래에 코를 처박는 대신, 물고기가 된 나비는 바람 거
품이 계속 뿜어져 나오는 그곳에 머리를 갖다 대고 있었다. 바람을 마시고 죽은 나비가 바람을 마시고 있으니 기
분이 묘했다. 나비는 지느러미를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그 자리에 떠 있었다. 물속에, 떠있다.
거기는 좀 어때?
그냥 그래.
무지개가 나비가 되자 영희는 물고기 밥을 바꾸었다. 나비는 다시 천천히 사라져서 무지개가 되었다.
하아 - 하.
10.
영희와 함께 밖에 나왔다.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영희의 가슴 높이에서 바라보는 세상이란 - 이렇게 생겼구나.
많은 것이 낮고, 작았다. 싫지 않은 느낌이다. 스치는 바람이 기분 좋았다.
하아 - 하.
11.
“바람은 왜 하필 이름이 바람일까?”
영희는 중얼거렸다. 나는 꼬리를 살랑거린다. 영희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따스해서였다. 무지개를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그랬다. 매미가 시끄럽지 않게 맴 - 맴 - 맴 - 찌이이이 - .
소리는 크지만 시끄럽지 않다. 매미 소리는 뜨거워서 바람을 달군다. 그래서 요즘 날씨가 그렇게 더운 게
아닌가 싶다. 바람이 춤을
달구어진 춤을 춘다. 따스하다. 조금은, 덥다. 나는 지루해져서 몸을 돌려 영희를 바라보았다. 영희는 나무
그늘에 몸을 식히러 들어온 바람을, 들이키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 기분이 좋아 보인다. 내가 영희에게
“야옹”하고 말을 걸기도 전에, 영희는 내 시선을 느끼고 나를 바라보며 내 등을 쓸어내린다. 그리고는
또 중얼거린다. 정말 내가 자기 말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마, 우리는 바람을 바라고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몰라.”
바람을 삼키는 영희의 콧구멍에서
하아 - 하.
12.
너를, 만져보고 싶어.
무지개는 내가 그러건 말건 상관하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물고기 밥을 꿀꺽꿀꺽, 처먹고 있다. 무지개는 또 나
비가 되려는 걸까? 앞발에 침을 묻혀 얼굴을 닦았다. 영희가 넣어준 물고기 밥을, 무지개는 다 먹어치웠다. 아
니, 한 톨 남겼다. 먹기가 싫어서 남긴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 무지개가 중간에 똥을 싸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물고기 밥은 무지개의 똥과 모양도 빛깔도 거의 똑같아서, 무지개는 더 이상 자기 똥과 밥을 구분하지
못했다. 똥을 먹을까 봐 무서워서, 밥을 남긴 것이다.
바보 같다 -
그러자 무지개는 자기 똥까지 함께 삼키기 시작했다. 맛을 보고는 뱉는다. 이럴 때 사람처럼 웃을 수 있으면 얼
마나 좋을까. 무지개는 똥을
삼키고 뱉고 삼키고, 뱉고 삼키고 뱉고, 삼켰다. 그리고 뱉지 않았다. 그걸 그냥 밥으로 여기기로 했나 보다.
웃음 대신 바람이 내 코에서
하아 - 하.
13.
어떻게든 무지개를 만져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항은 너무 크고 높았다. 그저 한숨만
하아 - 하.
14.
영희가 어항 옆에 노래하는 상자를 놔두었다. 나는 상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신기해서 바라본 것은 아니었
다. 노래 같은 건 영희도 하는걸 뭐. 대신 상자를 밟고 오르면, 어항 속에 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마냥
바라보았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영희의 무릎 위에서 뒹굴 때도 계속, 바라보았다. 상자가 노래를 하건 어쨌
건, 상자는 가능성이었다. 기회였다. 기대에 뜨거워진 바람이 콧구멍 사이에서 들락날락거리며
하아 - 하.
15.
상자 위에 올라섰다. 상자가 노래한다. 하아 - 하.
16.
어항 속에 들어왔다. 물이 차다. 무지개는 따뜻했는데. 물만큼은 견딜 수 없이 찼다. 고개를 물속에 넣고 무지
개를 바라보았다. 물속에서 보니 무지개는
아
무지개가 아니라, 그냥 물고기였다. 물고기는 내가 물속에 들어오자 깜짝 놀라서 펄떡거렸다.
널 그렇게 만져보고 싶었는데.
나는 물고기야.
맞아. 넌 그냥 물고기야.
물속에 오래 있었더니 어느 순간 괴로워진다. 바람을 - 아니 바람 대신 물이 있다.
계속 이 안에 있으면 넌 죽을 거야.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나는 허우적허우적, 물에서 빠져나가 코만 바람 속에 집어넣는다. 숨이 급하다. 헐떡인다. 하, 하아 - 하, 하,
하아 - 바람 속에 누워서 죽어간 그 물고기처럼, 숨을 쉰다. 아니, 쉬려고 애쓴다. 하, 하아 - 하, 하, 하아 - ,
하, 하.
하아 - 하.
17.
바람은 바람이다.
물은 바람이다.
바람은 물이 아니다.
18.
이제는 끝이구나
싶어서, 겁을 덜컥 집어 삼켰다. 물도 삼켰다. 바람도 마시고 물도 마시는데, 바람하고 달라서 물은 너무 마셨다
가는 죽는구나, 했다. 거기에서 나는 나와 무지개, 아니 물고기 사이에 어떤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것이 보였다.
수면처럼 얇고 투명하고
차가운
그리고 나는 살았다. 영희가 소리를 지르며 나를 건져주었다. 바람 속에 들어온 내 입으로 바람이
하아 - 하.
19.
그래서 영희에게 또 혼났다.
하아 - 하.
20.
창가에 누웠다. 시원하게 바람이 분다. 바람을 정면에서 받으며, 들이킨다.
더 이상 무지개를 바라보지 않았다.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맛있다.
물고기는 물을 마시고
나는 바람을 마시고
하, 하아 - 하, 하, 하아 -
하아 -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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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적인 느낌으로 쓴 글입니다. 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문득 떠올라서. 쓰고 보니 애자같네요.
애자라고 자학하실건 아닌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