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창작물을 자유롭게 올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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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찌질한 내 인생의 기록이다.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왜 이런 것을 적느냐면
재미를 위해서이다.
어차피 모든 게 따분한 인생에 심심풀이 아니겠는가?
내가 오래동안 품어 온 만화가의 꿈을 버리고 게임 제작자가 되게 된 것은
역시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산 컴퓨터가 원인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초등학교 2학년 때 옆집에서 버린 286 컴퓨터겠지만.
어쨌든 난 베이직이 좋았고 뭔가 만드는 것도 좋았다.
당시에는 내 게임을 하는 건 겨우 몇 명의 친구였는데도
지금보다도 게임 제작의 보람이 컸던 것 같다.
그들은 친구들이었고 얼굴을 맞대고 진심으로 재밌다고 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얼굴도 모르고 단지 정해진 매너를 지키기 위해 멋지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닌.
내가 게임 제작을 시작한 것은 PC통신 초장기였다.
중2인가 중3이 되어서야 집에서 모뎀을 사서 통신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하이텔을 최초로 썼다.
당시 게제동에는 많은 아마추어 제작자가 있었고
규모는 작았지만 재밌는 게임제작 공모전도 열리곤 했다.
당시에는 댓글이라는 것이 없어서 오직 답글이었다.
아니면 소감 게시판에 소감을 쓰는데
그 수는 예상하겠지만 아주 적었다.
그래도 모두 열심히 만들고 자신의 것을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보람되었던 것 같다.
당시 명작으로는 '삭제되었수다'나 '대변파이터' 등이 있었는데
'페르시아 공주'라는 게임도 상당히 재밌었다.
(난이도도 극악이었고)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지금은 정보도 얻을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그리고 2000년(고3) 때 RPG2000과의 역사적 만남을 갖게 된다.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왜 이런 것을 적느냐면
재미를 위해서이다.
어차피 모든 게 따분한 인생에 심심풀이 아니겠는가?
내가 오래동안 품어 온 만화가의 꿈을 버리고 게임 제작자가 되게 된 것은
역시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산 컴퓨터가 원인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초등학교 2학년 때 옆집에서 버린 286 컴퓨터겠지만.
어쨌든 난 베이직이 좋았고 뭔가 만드는 것도 좋았다.
당시에는 내 게임을 하는 건 겨우 몇 명의 친구였는데도
지금보다도 게임 제작의 보람이 컸던 것 같다.
그들은 친구들이었고 얼굴을 맞대고 진심으로 재밌다고 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얼굴도 모르고 단지 정해진 매너를 지키기 위해 멋지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닌.
내가 게임 제작을 시작한 것은 PC통신 초장기였다.
중2인가 중3이 되어서야 집에서 모뎀을 사서 통신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하이텔을 최초로 썼다.
당시 게제동에는 많은 아마추어 제작자가 있었고
규모는 작았지만 재밌는 게임제작 공모전도 열리곤 했다.
당시에는 댓글이라는 것이 없어서 오직 답글이었다.
아니면 소감 게시판에 소감을 쓰는데
그 수는 예상하겠지만 아주 적었다.
그래도 모두 열심히 만들고 자신의 것을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보람되었던 것 같다.
당시 명작으로는 '삭제되었수다'나 '대변파이터' 등이 있었는데
'페르시아 공주'라는 게임도 상당히 재밌었다.
(난이도도 극악이었고)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지금은 정보도 얻을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그리고 2000년(고3) 때 RPG2000과의 역사적 만남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