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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 일행은 민박집 앞에 집결한다. 부랄리우스는 모리스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치고는, 한 쪽 눈을 찡긋하며 자랑스레 말한다.
“자네였지?”
“뭐가요?”
“도둑 말이야.”
‘그걸 이제 알았냐.’
모리스는 부랄리우스가 한심했지만 내색하지 않기로 한다. 어쨌건 일행은 여행증 위조업자에게 다시 한 번 가보기로 한다. 바람처럼 내달려 위조업자의 사업장에 도착한 일행은 조심스레 문을 두드려 본다.
“계십니까?”
역시나 답은 없다. 모리스는 다시 한 번 문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본다. 뭔가를 다급하게 정리하고 챙기는 소리가 들린다. “안에 사람이 있군요.” 부랄리우스는 흉악한 주먹으로 문을 쾅쾅 친다.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얼른 문을 여시오!”
“그런다고 열어줄 것 같지 않으니, 차라리 문을 부수죠.”
모리스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행동파인 부랄리우스는 있는 힘껏 문에다가 몸통 박치기를 한다.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문은 부서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지만, 사실 그 문은 미닫이였다고 한다.
위협적인 소리에 놀란 위조업자는 봇짐을 맨 채 뒷문을 열고 줄행랑을 치기 시작한다. 부랄리우스는 문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어깨를 돌보느라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저 놈 잡아라!” 박춘배는 도망치는 위조업자를 붙잡기 위해 달린다. 하지만 중도 비만인 그의 몸은 그의 의지를 배신하고 말았다. 박춘배는 눈을 밟고 미끄러져 나뒹군다. “느어억!”
다행히도 위조업자를 뒤쫓은 것은 박춘배만이 아니었다. 모리스는 날랜 도적답게 위조업자를 따라잡는데 성공했다. 모리스의 손이 위조업자의 봇짐을 붙잡았고, 위조업자와 모리스는 눈밭에 쓰러진다. 와장창! 위조업자의 봇집이 바닥에 떨어지며 풀어헤쳐진다. 봇짐 안에서는 꽤 값나가게 생긴 물건들이 잔뜩 쏟아졌다.
“아이구구…”
바닥에 쓰러진 충격에 위조업자는 허리를 부여잡고 신음한다. 그때 어깨의 통증을 돌본 부랄리우스가 성큼성큼 쓰러져있는 모리스와 위조업자에 다가온다. 그리고 그 우악스러운 손을 내뻗는다.
그리고는 바닥에 있는 황금잔을 집어든다.
“비싸보이는군.”
모리스는 어이없어하며 부랄리우스와 박춘배를 번갈아 노려본 후, 위조업자에게 말을 한다.
“당신, 도망칠 생각은 마시오. 여차하면 저 삭막한 친구들한테 당신을 손보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위조업자는 바닥에 절하는 모양새로 엎드려 이마로 바닥을 찧으며 모리스에게 애원한다.
“아이고, 나으리! 제발 살려주십시오!”
“살려달라니? 우린 그저 위조된 여행증이 필요할 뿐인데.”
위조업자는 부담스럽게 큰 눈을 몇 번 꿈뻑이더니 얼빠진 목소리로 되묻는다.
“절 잡으러 오신 게 아닙니까요?”
“아니오. 뭔가 오해했나보군.”
“그런 줄도 모르고 … 전 틀림없이 절 체포하러 오신 줄 알았단 말입니다. 제가 여행증을 만들어준 친구들 몇몇이 붙잡혔다고 들어서요. 지금쯤이면 다 줄줄이 불었겠다 싶었거든요.”
“쓸데없는 오해였소. 우린 그저 여행증이 필요해서 당신을 찾아온 거요.”
위조업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때 부랄리우스가 위조업자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한다.
“하하. 그런 오해를 했다니. 오해한 값은 이 황금잔 하나로 퉁치자고.”
얼빠진 얼굴로 부랄리우스의 얼굴을 쳐다보던 위조업자는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게 무슨 날강도 같은 소립니까! 돌려주십시오. 여행증은 무상으로 만들어드릴테니.”
그러고는 부랄리우스의 손에 있던 황금잔을 낚아채어 간다. 순간 손에 든 물건을 빼앗긴 부랄리우스는 살의를 느낀다. 인면수심이라 하면 바로 이런 자를 말하는 것일테다.
한바탕 소동 끝에 위조업자를 포섭한 일행은 곧 여행증을 손에 넣는다. 일행을 전송한 위조업자는 사업장 문을 걸어잠그고 다시 차분하게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한다. 일행은 사업장 문 앞에서 거취를 결정하기 위해 잠시 회의를 한다.
“음. 여행증도 손에 넣었고. 이 마을엔 볼 일이 없으니 떠나도록 하는게 어떻습니까.”
모리스가 제안한다. 부랄리우스는 손을 내젓는다.
“뭘 그리 급하게. 하루 정도는 쉬어 가도 될 거 같은데.”
“사실은 아까 공원에서 노숙하다가 경비한테 걸렸거든요. 더 있으면 곤란할 것 같습니다.”
“그럼 자네 때문에 괜히 길을 재촉해야한단 말이군.”
“... 미안합니다.”
비굴한 도적답게 모리스는 괜히 부랄리우스에게 사과한다. 그 때 박춘배가 순진한 눈빛을 하고 말한다.
“근데 말일세. 저 위조업자 내버려둬도 되는 걸까?”
“그럼 어쩌잔 말입니까?”
“죽여버리세. 뭔가 찜찜해. 후환거리를 남겨두지 말자구.”
모리스는 이 미치광이 드워프의 잔혹함에 경악한다. 도무지 인격자라 할 수 없는 부랄리우스마저도 그를 비난하며 반대한다.
“아무리 그래도 여행증을 무상으로 만들어줬는데 죽이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 그냥 냅두고 가지.”
황금잔을 강탈하려 했던 주제에 도리 운운하는 부랄리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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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했던 여행증을 어찌저찌 손에 넣은 일행은 시아게르타 방향으로 길을 떠난다. 얼마쯤 걸었을까, 일행은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난다. 뒤를 돌아본 일행은 서너명의 무장한 인원이 말을 타고 일행을 뒤쫓고 있음을 발견한다. 모리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인원들의 행색을 살핀다. 그들은 블랙스톤의 경비대원들이었다.
‘이런 망할.’
모리스는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린다.
“블랙스톤 경비대원들입니다. 우릴 뒤쫓는 것 같군요.”
“말을 타고 있으니 도망칠 수도 없고. 숨을까?”
“이제 와서 숨는 건 소용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할 수 없군.”
부랄리우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모리스를 번쩍 집어든다. 모리스는 몸을 뒤틀어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부랄리우스의 우악스러운 손은 그를 놓치지 않았다. 저항을 포기한 모리스를 손에 든 부랄리우스는 차분하게 경비대원들이 자신들 앞으로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경비대원들이 일행 앞에 도달했다. 경비대원들은 창을 꼬나쥔 채 말에서 내렸다. 그들 중 최선임자로 보이는 경비대원이 부랄리우스에게 다가온다.
“블랙스톤에 있던 여행자들이지?”
“그렇소만.”
부랄리우스는 경비대원을 노려보며 대답한다.
“신고가 들어왔소. 우리 마을 상인을 괴롭히고 금품을 강탈했다던데. 얌전히 동행해주셔야겠소.”
“아, 뭔가 오해가 있나보군. 그 고약한 강도는 바로 이놈이오.” 손에 든 모리스를 보란듯이 휘두르는 부랄리우스. “시아게르타 여기저기서 도둑질과 강도질을 일삼은 현상수배범이지. 내가 붙잡았으니 당신들은 일 없소.”
경비대원은 그 말에 일견 수긍하는듯 보이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친다.
“거짓말 마시오! 신고자는 당신들이 이미 일행임을 다 진술했소.”
“그 작자 말은 믿지 마시오. 결코 선량한 시민은 아니니까.”
“그럼 우리 이웃의 말을 믿지 말고 당신네 같은 부랑자들의 말을 믿으란 거요? 허튼 소리. 피 보기 싫으면 곱게 체포되는게 좋을 거요.”
부랄리우스는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빙긋 웃으며 말한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바로 다음 순간 부랄리우스의 ‘공포의 다섯 손가락'이 경비대원의 머리를 내려친다. 경비대원의 투구는 볼썽사납게 우그러지며 그의 두개골을 파고들었다. 경비대원은 눈과 콧구멍, 그리고 입에서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진다. 경비대원은 그대로 절명했다. 선임자가 쓰러지는 것을 본 두 명의 경비대원들은 경악하며 창을 꼬나쥐고 양쪽에서 부랄리우스에게 달려든다. 맨 뒤에 있던 경비병은 활을 들어 부랄리우스에게 겨눈다.
“위험하네!”
박춘배는 방패를 치켜들며 부랄리우스를 막아주려고 몸을 날렸지만, 그만 부랄리우스와 충돌하여 함께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아히쿠!”
“젠장! 뭐하는 거야! 가만히 있을 것이지!”
모리스는 부랄리우스의 손아귀를 벗어나서 날래게 길 옆 풀숲에 몸을 숨긴다. 박춘배와 함께 쓰러진 덕에 화살은 피했지만, 두 자루의 창이 부랄리우스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부랄리우스는 박춘배의 몸을 조금 비틀어서 창의 궤적에 올려놓았다. 고기 방패로 삼은 것이다.
“끄억!”
박춘배의 풍만한 복부에 창이 꽂혔고, 그만 구멍이 나버렸다. 박춘배는 피를 흘리며 혼절했다. 동료를 방패로 삼는 냉혹한 모습에 당황한 경비대원들은 창을 잡아당겼고, 그 사이 부랄리우스는 박춘배를 밀치며 자세를 회복한다. 그리고는 양쪽의 경비병들을 무시한 채 활을 겨누고 있는 경비병에게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경비병은 화살을 쏘았지만, 부랄리우스는 놀라운 민첩성을 발휘하여 화살을 빗겨나가게 했다. 화살을 다시 시위에 먹일 틈이 없었던 경비병은 허릿춤의 단검을 꺼내어 달려드는 부랄리우스에게 대항하지만, 단검은 어설픈 선을 그리며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우지끈! 부랄리우스의 육중한 주먹이 경비병의 얼굴을 강타하고, 경비병은 이빨과 피를 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는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풀 숲에 숨어 있던 모리스는 자신의 낡은 활을 꺼내어 창을 든 경비병 중 한 명을 노린다. 모리스가 쏜 화살은 경비병 하나의 어깨에 깊숙하게 박힌다. “으악!” 경비병은 어깨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주저 앉아 버린다. 다른 한 명의 경비병은 동료를 보살피지 못하고 창을 바로쥐어야 했다. 부랄리우스가 그에게 쇄도했기 때문이다. 어찌저찌 부랄리우스를 창으로 찌르며 막아내던 경비병은 모리스가 뒤에서 접근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모리스는 레이피어의 손잡이로 경비병의 뒷목을 강타했고, 경비병은 바닥에 쓰러져 기절했다.
그렇게 경비대를 모조리 제압한 일행. 잠시 숨을 고르던 부랄리우스는 쓰러진 경비대원들의 칼을 꺼내서는 화살에 고통 받던 경비대원과 기절한 경비대원의 목을 쳐버린다.
“내 앞길을 막는 놈에겐 죽음 뿐이지.”
상쾌한듯하다. 그러고는 경비대원들이 타고 온 말들을 죽 보더니 그 말들 마저도 모조리 죽인다.
“아니, 말들까지 죽일 건 뭡니까.”
“어차피 군마의 낙인이 있어서 타고 다니지도 못해. 고기나 얻어야지.”
그러고는 상당한 양의 말고기를 해체하여 박춘배의 짐가방에 고기를 집어넣는다.
“쓸모도 없는 드워프 늙은이, 짐이나 더 지라지.”
모리스는 동의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박춘배는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는 경비대원들과 말들이 몰살 당한 광경을 보고는 탄성을 지른다.
“오오, 이것은!”
부랄리우스와 모리스가 대체 뭐가 이것이냐고 묻고 싶어졌을 때, 박춘배가 말을 잇는다.
“그야말로 호이겐스님이 기꺼워하실 광경이 아닌가.”
도대체 무슨 신을 섬기고 있는 것인지. 일행은 아연해한다. 박춘배는 그자리에서 기도문을 읊조린다. 호이겐스에게 예배를 드린 박춘배는 조심스럽게 일어나더니 구멍난 자신의 배에 오른손을 가져다댄다. 빛이 번쩍이고, 박춘배의 상처가 말끔하게 사라진다.
“영감, 그런 것도 할 수 있었어?” 부랄리우스가 놀라며 말한다.
“당연하네. 난 호이겐스님의 사제가 아닌가.”
“그렇다면 내 상처도 좀 봐주셔.”
박춘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랄리우스에게 다가가 기도문을 읊조린다. 박춘배의 손에서 다시 한 번 밝은 빛이 일렁인다. 하지만 부랄리우스는 상처가 낫기는 커녕 오히려 굉장히 쓰라리고 고통스러워진다.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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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대원들의 시체를 뒤져 약간의 돈과 썩 쓸만한 활 한 자루를 챙긴 일행. 경비대원과 말들의 시체를 말끔히 풀숲에 유기한다. 또 다른 추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행은 길에서 벗어나 어느 야산의 숲 속으로 숨어든다. 불을 피우고 야영을 한 일행은 낮에 얻어두었던 말고기를 구워서 끼니를 해결한다. 모닥불에 몸을 녹이며, 일행은 서로에 대한 생각을 한다.
부랄리우스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박춘배의 연속된 헛짓거리들을 보며, 그가 도저히 쓸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지간해서는 그에게 도움을 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리스는 경비대의 추적이 아무래도 자기 탓이 아닌가 싶어서, 부랄리우스에게 작은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박춘배는 비교적 상식적인 인간인 모리스와 자꾸 의견이 충돌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무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싹틀 기미가 안 보이는 이 위태로운 일행에게, 어두운 숲 속의 밤이 찾아든다.
부랄리우스 악성향인데 생각보다 안 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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