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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엔터테이먼트,
학생들 만의 엔터테이먼트.
아기, 어린이, 청소년, 성인, 노약자...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모든 인간은
엔터테이먼트를 갈구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조용하고 공부를 사랑하는 사회의 아웃사이더라도,
마음 한편으론 확실하고 분명하게 오락거리를 부르짖고 있다.
독서, 만화, 영화, 음악, 미술, TV, 게임, 음란물까지...
온갖 오락거리가 난무하는 이 현대사회에서 엔터테이먼트를 꺼리고 무시하는 자들은
중국의 전족과도 같은 악습, 전 세대가 남긴 구사고적, 시대 착오적 유산이니
마음놓고 버린뒤 욕하고 경멸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엔터테이먼트가 성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닌만큼, 우리 학생들에게도 많은 오락거리가 주워진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한적 엔터테이먼트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어른들의 발자국, 혹은 발 뒷꿈치나 엉덩이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유아적 행위에 그칠 수 밖에 없다.
학생들은 하루의 약 반을 학교에서 흘려보낸다.
관용적 표현같은게 아니라, 말그대로 그냥 흘려보낸다. 질질.
(물론 이 글을 쓰는 나를 포함해 많은 학생들은 학원을 다니지 않기도 하고, 학교 생활도 '비교적' 정력적이지만...)
그리고 나서, 원치도 않는 학원에 뛰어들어 한참을 헤맨다.
어른들이 '사교육의 폐해다', '학원은 본래 학교를 위한 보조적 존재'라고 말하는것도
이런 부류의 학생들에겐 그저 잔소리, 헛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것이 틀림없다.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정력적이지 못하고 비효율적, 비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학생들에겐
시간이라는것이 정말이지, 너무 부족하다.
집에 귀가하면 10시, 부모님과 대화 한마디 없이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자기방으로 쏙! 가끔씩 부모님과 나누는
대화는 기껏해봐야 자기들의 무책임한 기대에 미치지 못한 학생들의 성적에 관한 책망과 일방적 설교.
자기들 나름대로의 압력과 스트레스 속에 갇혀사는 학생들은 어른들이 간섭하지 못하고, 그 짧은
하루내에 충분히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이먼트를 찾아내야만 하는 긴박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
아무리 거칠어도, 바보같아도, 원시적이어도 좋으니 뭐든, 뭐든 즐길거리가 필요하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기적적이게도, 학생들이란 존재들은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아주 훌륭한, 훌륭할 정도로 원시적인
엔터테이먼트, '왕따' 를 발굴해내고야 만다.
이지메, 따돌림, 찐따, 동네 북...수많은 명칭을 소유한 이 대단하게 원시적인 엔터테이먼트를 굶주린 학생들에게
아주 훌륭한 먹이가 된다.
물론, 이 탐스러운 먹잇감은 학생들 중에서도 상층, 흔히 말하는 '노는 애'들과 같은 귀족계층이나 '따까리'와 같은
부르주아들에게만 주어지는 고급스러운 호화 만찬이다. 나와 같은 평범한 서민들은 운좋아야 부스러기,
그나마도 없으면 구경만 하며 배를 곯아야 한다.
때리고, 모욕하고, 정신을 처참하게 깨부수고!
실질적으로 왕따라는 오락거리는 우리 서민보다 아래에 위치한다.
이 존재들이 믿을 수 있고...믿어야한 하는 것들은 위선자들의 위선적이고 역겨운 미소뿐.
오락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그들에게 위선이 아니라 진짜 미소를 보여주게 되면
그 순간 목덜미를 물린다. 그들과 자신의 위치가 교환된다.
훌륭한 오락거릴 풀어놔버린 죄로써 스스로가 오락거리의 위치가 되어 봉사해야만한다. 이런 큰 대가를
치루면서까지, 오락거리들을 구제하려드는 성인군자는 아직 없다. 물론, 앞으로도 없겠지만.
자, 그럼 이쯤에서 가벼운 경험담을 들어보자.
자폐증을 앓고 있는 우리 학교의 ○학생. OT때, 나와 우연히 같은 방이 되었는데, 불행스럽게도 노는애 2명과
따까리 3명이 나머지 인원을 채웠다.
TV를 보다 느닷없이 얻어맞고, 심심하니까 장난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팬티가 벗겨져
털이 나기 시작한 건장한 성기를 노출당하고...
아이들의 과장되다 싶을 정도로 끔찍한 비웃음속에서 OT를 끝마쳤더랬다.
성기를 노출당한채, 비웃음에 휩싸여 수치감에 눈물을 흘리는 남자아이 ○가 불쌍하다 느낄만한 사람은 나뿐일까.
'포르노 보고 오면 놀아줄께' 라는 말을 듣고, 집에서 포르노를 보다가 들킨 ○의 심정은 어땠을까.
교실의 한 가운데에서 얻어맞으며 놀림 당하는 ○. 그리고 그것을 기다렸다는듯 달려드는 학생들.
자기들이 피해입지 않을만한 위치에서, 최대한 만족스럽게 즐긴다. 더럽고 추한 그 마인드는 누구라도 좋으니
어서 경멸하고 비웃어줬음 소원이 없겠다 싶다.
이래선 철없던 우리가 그렇게 적대시하고 이해하지 못한 어른들과 다름이 없다.
굶주린 아이들은 내던져진 오락거리를 씹어먹고, 씹어먹고.
희곡의 후반에서, '오락거리들'은 이 더러운 현실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탈출구로 커터칼과 나이프, 혹은 로프나 높은 건물을
사용한다. 즉, 자살. 어떠한 감흥도, 결명과 역겨움만으로 가득찬 무감각한 삶을 죽음으로 끝맺음한다.
동맥에서 뿜어져 나와 용서없이 흘러만 내리는 액체를 보고,
로프에 머리가 매달린채 어지러움속에서 마지막으로 비치는 빛과 땅바닥을 바라보고,
추락하는 자신의 시야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려오는 지면을 보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더러웠던 지금까지의 삶에 침을 뱉고, 시야에 뻗쳐오는 검은 얼룩을 받아들이면서, 뭐라고 세상에 외치고 있을까.
친구 라고는 나이프와 로프, 옥상밖에 없었던 자신의 삶을 한번 느껴볼테냐, 고 부르짖고있을까,
더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만든 우리를 향해 욕짓거리를 내뱉고 있을까.
자신들이 빋어낸 오락거리.
학생의 엔터테이먼트.
학생들만의 엔터테이먼트.
암묵적인 룰과 계급속에서, 학생들은 하루하루 여전히 오락을 즐기고 있다.
자신이 잡아먹힐테냐, 아니면 다른녀석을 희생양으로 삼아 살아남을테냐. 네가 죽기 싫으면 저녀석에게
바톤을 넘겨라. 너도 죽기 싫으면 저기 저녀석에게 바톤을 쥐어줘라. 이 얼마나 훌륭한 엔터테이먼트인지!
이제, 게임을 그만두고 로그아웃하고 싶다면 한시바삐 나이프, 로프와 친해져야만 한다.
스스로 낳아낸 날카로운 흉기는 학생들의 목을 겨누고 날을 시퍼렇게 번쩍인다.
오늘도 학생들은 생존을 위해 엔터테이먼트를 즐기고,
엔터테이먼트를 즐기기 위해 살아남는다.
충분히. 필요 이상으로 즐길 수 있으며, 어른들조차 결코 침범할 수 없는 불가침의 엔터테이먼트.
엔터테이먼트를 처절히 갈구하던 학생들은 엔터테이먼트에 목이 졸려 발버둥친다.
I HAT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