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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다시피, 지적 생명체가 처음부터 우주를 지배한 것은 아니었다. 지적 생명체는 언어라고 불리는 의사소통 수단을 이용해 지식을 쌓아 여러 체계를 만들 수 있었다. 이는 결국에 자신들을 질긴 점심 거리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던 강력한 생명체를 오히려 자신들의 오늘의 주방장 추천 요리 재료로 사용할 만큼의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십진수 체계가 그 중 하나인데, 매우 오랜 시간 전, 우주 여러 지적 생명체들은 수가 커질때마다 새로운 문자를 이용해 그 숫자를 표현하는 것이 우주에서 제일 인기있는 스포츠 중 하나인 반중력 농구의 점수를 표기할 때 매우 짜증난다는 사실을 한결같이 인정했다. 그들은 회의를 소집해 2진법, 7(듀보즈 행성인들의 손가락 개수이다.)진법, 16(조플란드 행성인들의 손가락 개수이다.)진법,147(키베리어 행성인들의 생식기 개수이다.)진법 등을 8923엔트로피 단위의 무질서도를 가진 추첨기에 넣고 하나를 뽑아 우주 진법을 통일하려 했다. 하지만 전 우주에서 단 두 행성에서밖에 쓰이지 않았던 십진법이 뽑혀 이것에 불만을 가진 행성들이 이를 두고 다시 없을 큰 전쟁이 일어났으나, 결국에는 불만이 있던 행성들에게 100년간 반중력 농구 경기의 예선 진출권을 주는 것으로 타협해 마침내 우주 전체에서 십진법을 쓰게 되었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어쨌든, 출장 물리학자 방정식에게 십진수 체계가 위에서 얘기한 지적 생명체의 업적 중 하나라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 망할 놈의 "6:00 AM"이 마음에 안 들 뿐이었다. 아니, 그 정도 차원이 아니었다. 그 숫자들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산 채로 잘게 썰어 우유(혹은 시레기 된장국)에 말아 아침밥으로 먹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과거 12년 동안 안드로메다 페타-프락시계 감마 행성에서 학자들은 주로 어떤 소리가 사람들의 신경을 쥐어뜯는지 연구해 왔다. 주민들은 밤낮으로 유체역학?심리학?음향학의 기술의 총아인 소음을 들으며 영화 보는것을 괴로워하는데 지친 나머지 안드로메다 은하 중앙법정에 단체로 소송을 걸었고, 법정에서는 학자들에게 귀마개 120억 5213만 342개와 카라멜 바른 팝콘 12조 739톤(이 중 100톤은 운반하는 과정에서 소실되었다. 함장을 지독한 팝콘광으로 고용한 것이 잘못이었다.)을 주민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고, 이는 두고두고 안드로메다 10대 명판결로 자주 회자되곤 한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옆쪽 입실론 행성의 처인나 사에서는 이 기술을 사서 알람 시계를 제작했다. 이 시계는 정말 불티나게 팔렸다. 지금도 역시 불티나게 팔린다. 잠을 깨게 하는 확률이 매우 높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사실 그 중 96%의 제품이 박살나서 재구매한다는 사내 조사 결과가 있다.
 삐비빜콰앙!
 시계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살났다. 처인나 사의 고객불만접수센터의 95%가 시계가 너무 잘 부서진다는 것인데, 회사 측에서는 귀머거리조차도 오만상을 찌푸릴만한 환상적인 알람 소리가 사용자의 무의식 속 생존 본능을 일깨워 순간적으로 엄청난 힘을 내기 때문에 중저가 모델의 파손을 막기 힘들다고 변명했다. 여간해선 부서지지 않는 고가 모델도 있기는 하지만, 너무 비싸고, 너무 무겁고, 일어날 때 알람 시계 대신 시계를 올려 놓은 탁자나 바닥이 부서진다는 단점이 있다.
 "으...졸려..."
 사실 방정식에게는 6시에 일어나는 일이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는 학생 때도 7시 이전에 일어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학교에 늦어서 얻어맞는 일이 능사였다.
 "썩을 놈. 6시 기상이라니. 이건 인권 탄압이야. 시계 값 물어내라고 해야지."
 그는 중얼거리며 박살난 시계의 파편을 버리고 옷을 챙겨 입었다. 셔츠, 타이, 약간 각이 진 웃옷과 바지로 이루어진 옷으로, 보통 학자들이 관습적으로 전 우주적으로 입는 옷이다. 보통 학자복이라고 불리는 이 옷이 G12a8 은하의 솔 항성(그쪽 동네에서는 태양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의 세 번째 행성인 지구라는 곳에서 흔히 '정장' 이라고 부르는 옷과 똑같이 생긴 것은 놀라운 확률적 우연이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학자복보다 훨씬 부드럽고 입기 좋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지만, 그 정장이라는 물건을 구하려고 그 먼 거리의 항공편을 감당할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대다수의 학자들은 침만 삼키고 있다. 하지만, 범우주적 깡촌 지구 출신인 방정식의 옷은 고향에서 사 온 정장이었고 덕분에 동료 학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어쨌든 방정식은 옷을 다 챙겨입고 공항으로 나섰다. 일부러 공항 바로 옆 여관에서 잤기 때문에(이륙 소리에 잠은 설쳤지만.) 걸어서 공항까지 갈 수 있었다.
 공항 건물은 터널 모양이었다. 어두컴컴하고 지저분한게 지은 지 400년은 넘었을 것 같았다. 사실 그에게 공항 사정은 전혀 알 바가 아니다. 자신을 6시에 일어나게 만든 놈이 약속시간인 7시를 30분이나 어기고 있는 것이 꽤 심기를 건드릴 뿐이었다. 자기가 다른 데서 잔다고 박박 우기지만 않았어도 약속 잡고 빨리 일어날 일도, 밥도 못 먹고 기다릴 일도 없었을 텐데. 참 뻔뻔도 하다.
 이 때, '어, 그런데 저기서 누가 뛴다...?' 고 방정식은 생각했고, 바로 그 다음 순간 학자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뭐야, 너 거기 있었냐?"
 "김경수 이 망할 자식이. 너때문에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기다렸는데 니가 늦게 나오냐?"
 "어쨌든 뛰어! 우주선 놓친다! 짐은 맡겨 놨어!"
 여기서 잠시 설명하자면, "김경수"는 방정식의 고향 친구로, 수학자다. 방정식보다 나중에 지구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적응을 잘 하는 편이다. 평소부터 익숙치 못한 곳에 적응을 잘 하긴 했지만, 감당할 수 있는 범위가 이 정도까지라고는 그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 경수는 정식의 카라를 잡아당기며 뛰었다. 방정식은 목이 잡아당겨져서 켁켁거렸다.
 "너 설마 우주선 시간 달랑달랑하게 온 건 아니지?" 방정식이 카라를 붙잡은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설마 안 그랬겠냐?"
 "설마...뭐?"
 "우리가 5분내로 탑승구까지 못 뛰어가면 놓친다고."
 "에라이, 확...!"
 다음 순간 그들은 죽어라고 탑승구까지 뛰었다. 공항이 별로 크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안가 행성간 출입국수속대까지 올 수 있긴 했지만 숨이 차 죽을 지경이었다.
 사실, 시리우스계 행성들의 전반적 특징중 하나는 공공 교통편이 매우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택시도 흔치 않고 그마저도 최근에 와서 수도 근처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귀해진데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이동수단은 아예 있지도 않으며, 행성간 공항이 행성 하나에 하나 뿐인 곳이 대부분이라 자가용을 몰 형편이 되지 않으면 한 번 오기도 힘든 곳이다. 그래서 학자같이 비교적 못 버는 사람들은 행성간 공항이 거의 유일한 우주 여행 수단이지만, 그 행성간 항공편이 거의 대부분 연착된다.
 주민들의 항의가 여러모로 빗발쳤지만 허사에 그치고 만 것은 관리들이 삼삼오오 모여 기간트 골프에 열중해서인 것도 큰 원인이지만, 서면으로만 제출하게 되어 있는 항의서를 실은 우주선이 엄청나게 연착되서이기도 하다.(160년 된 연착 우주선이 항공사 활주로 부근에서 발굴되기도 했다.)
 "헉, 헉. 몇 시 출발이야?"
 "일곱시 35분."
 "아직 안 늦었다!"
 다음 순간 그들은 개찰구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리겔계 출신의 항공사 직원이 접수대에 서 있었다. 그녀는 한창 때 회사에서 잘린 뒤 이런 곳에나마 취직해서 입에 풀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매우 기뻤으므로, 친절하게 그들을 맞았다.
 "어서 오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우리...우리는..헉..헉.." 방정식이 세차게 헐떡거리며 말했다.
 "네, 손님?"
 "7시 반쯤에 출발하는 다음 우주선을 타려고 하는데요." 지구에서 마라톤 동호회였던 김경수가 힘든 기색도 보이지 않고 말했다.
 그런데 출신 국가는 물론이고, 출신 은하까지 다른 이 두 사람이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행성인 푸체 행성에 본사가 있는 (주) 하이온 테크닉사에 할당된 엄청난 수의 직원들이 실 수요의 약 1500 내지 1600배의 "신체 내삽용 자동 통역기", 흔히 "픽커" 라고 불리는 물건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생체 에너지를 이용하기 때문에 따로 충전도 필요가 없고, 알약 하나 크기에다 엄청나게 싸서 우주 전체 인구의 거의 전부가 이용한다. 사실 이 제품에 얽힌 사건이 꽤 많지만, 별로 재미도 없다.
 "지금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운이 좋네!" 김경수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기는...개뿔!..헉..니가 늦게만..헉..안 왔어도...뛰지도 않았잖아!"  라고 방정식이 절망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손님? 제가 지금 기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잠시 이륙을 늦췄는데, 빨리 뛰어가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뛰어라! 정식아!"
 "또 뛰냐? 죽겠다. 죽어."
 "그 정도론 안 죽는다, 이 약골 자식아!"
 그는 이렇게 외치며 저 멀리 뛰어나갔다.
  "아이고. 못 뛴다, 못 뛰어. 걸어갈란다." 하고 그는 터덜터덜 탑승구 쪽 복도를 걸어나갔다.
 그들이 자리를 찾아 앉은지 얼마 안 되어 우주선은 이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리우스계 제 6행성인 옥사 행성의 3천km 두께의 대기권을 통과해 우주로 나왔다.
 우주에 한 두번 나와 보는 그들이 아니었지만, 아직 우주 여행에 이골이 날 정도로 많이 우주를 들락거린 것은 아니라 우주선에 앉아 창 밖으로 행성을 굽어볼 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뒤 안내방송이 나왔다.
 "기장 퓨 스코르세크가 탑승객 여러분께 안내말씀 드립니다. 이 우주선은 옥사 행성을 출발해 지벨린 은하 세터계 소버셔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입니다. 예기치 못한 반입자 폭풍이나 진공 요동을 만날 수 있으니 안전벨트를 항상 매어 주시기 바랍니다."
 상투적인 안내 방송이라 거의 누구도 신경 써 듣지 않았지만, 그 누군가는 신경써서 들을 수 밖에 없는 말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신경써서 들었으며, 어떤 이유로 인해 듣자 마자 얼굴이 굉장히 창백해질 수 밖에 없었다.
 "경수야?"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방정식이 물었다.
 "갑자기 왜 그렇게 느끼하게 부르냐?"
 "학계가 어느 행성에 있더라?"
 "그야.....헉!"
 그렇다. 우주선을 잘못 탄 것이다. 이건 대형사고 중에서도 특별하게 심한 대형사고다. 대부분 이런 여객선은 (은하간 고속도로를 주로 이용하긴 하지만) 수만 광년은 우습게 여길 만큼 먼 거리를 여행하기 때문에 한 번 잘못 타면 일이 커진다.
 보통 한 여객 우주선에는 200명 정도 타고, 초 호화 유람선 같은 경우에는 한 번에 백만 명까지 타기도 하지만, 이 비행기에는 300명 정도 타고 있는데, 보통 잘못 탄 경우에는 기장을 비롯한 승무원과 모든 승긱에게 모두 뇌물 격으로 돈을 주고 자신의 목적지를 경유해서 가게 하지만, 월급에서 방세만 빼도 허덕이는 학자들은 그럴 돈이 없는 것이 "학계"의 재정 상황이다. 게다가 척 봐도 꽤 고급 여객선인 것이 뇌물 같은 것도 좀체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뻔해 보였다.
 어쨌건, 이제 별 수가 없다. 그들은 이제 난생 처음 들어보는 행성에 가게 된 것이다. 게다가 당연히 학계에 가서 월급 받아 올 생각만 하고 도둑맞거나 잃어버릴 걱정에 여객선 승차 요금에 비하면 거의 한 푼도 돈을 안 들고 온 것이 더 큰 문제다.
 "우리 어떡하냐." 체념 섞인 목소리로 방정식이 말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역시 체념 섞인 목소리로 김경수가 받았다.
 "아직 고속도로 안 들어왔지?"
 "그럴 걸."
 "..한 번 해 봐?"
 김경수는 이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정신 나갔냐! 괜히 했다가 나까지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괜히 들키면? 무허가 웜홀 생성 벌금 엄청 비싼거 몰라?"
 "그도 그렇긴 한데, 너 생판 모르는 행성 갇혀서 거기서 살다가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죽을래?"
 반박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용된다. 요즘들어 전 우주에서 최고로 멋있는 반박은 시에타리아 행성의 코니즈 피랸라가 같은 행성의 세굴더에게 한 "삭스라랩트라프타"가 꼽히는데, 대충 해석하자면 "꺼져, 멍청아." 의 특별할 것 없는 뜻이지만 시에타리아 행성 어 특유의 운율과 음운들의 조화가 유명한 이유라고 한다.
 어쨌든 방정식이 김경수에게 방금 했던 이런 식의 반박은 연애 무경험자, 특히 '사출기는 나의 애인이었고, 논문은 나의 자식이었다' 라고 부르짖으며 솔로 인생을 자위하는 20대의 젊은 수학자에게 특히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긴. 그건 좀 싫다. 젠장, 죽기 아니면 살기다. 해 보자, 그래."
 "우선 에너지 좀 구해봐. 웜홀 만드는 에너지 양이 장난이 아니니까." 방정식이 말했다.
 "우리 몸 들어갈 크기만한 웜홀 하나를 한 10초 동안 유지하려면 몇 J이나 있어야 되냐?"
 "한 육백..억?"
 김경수의 입이 딱 벌어졌다.
 "육백억 줄을 어디서 가져와? 이 우주선 연료 다 빼도 그만큼은 안 나오겠다! 만리타향에서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죽다니! 억울해 죽겠네!" 김경수가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그도 그렇네..." 방정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젠장!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기내 서비스란 서비스는 다 이용해 버리자! 우선 공짜 저녁부터!" 
 김경수는 이렇게 말하며 앞 좌석 등받이에 파인 홈 속의 무료 저녁 식사 메뉴판을 힘차게 꺼냈다.
 "어디 보자.. 거티그로 스테이크, 볶음 슈처크면, 푸링데? 뭐지? 흠...  헥사콰드뮴 정식... 헥사콰드뮴..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 뭐였더라..?"
 김경수가 고개를 한참 갸웃거리는 동안 방정식은 온갖 생각을 다 하고 있었다.
 음, 월급날이 마침 내일이었는데 운도 없지. 월급 받으면 오랜만에 집에 한 번 갖다 올 생각이었는데. 선물로 헥사콰드뮴이나 한 상자 사 가면 집에 전기세 걱정은...  잠깐, 헥사콰드뮴?
 이 때 마침 두 명은 동시에 헥사콰드뮴에 생각이 미쳤고, 각자 소리쳤다.
 "헥사콰드뮴!"
 "헥사콰드뮴!"
 "어, 너도?" 방정식이 물었다.
 "너도 그 생각 했냐? 야, 우린 이제 살았어!" 김경수의 표정이 환해졌다.
 헥사콰드뮴. 1차 번역어로 두 번 번역하면 "육십사 쇠" 쯤이 된다. 유치한 이름은 집어 치우더라도 이 금속 원소는 원자량 64의 원소로, 우연히도 지구의 원소 구리와 원자량이 같다.
 이 원소가 구리와 다른 점이라면, 모든 원자의 구성 요소, 즉 양성자, 중성자, 전자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반입자쌍을 만들어낸다. 이 반응은 6차원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대부분의 에너지가 4차원 시공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로 다시 되돌아온다. 즉 외부에서 에너지를 조금만 가해 주어도 이 반입자쌍이 튀어나와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고, 큰 폭발이 일어나지 않아 안정적이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다는 것과, 또 다른 특징은, 가열하기 전에는 맛이 매우 달콤한 사과 맛이고 구조가 사과 과육과 매우 비슷해 깎아 놓으면 겉보기에는 사과와 다를 바가 없고, 가열하여 익히면 산뜻한 향기에 부드러운 질감과 오래 남는 향기를 지닌 최고의 고기의 맛이 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별로 흔한 편이 아니라 다른 싼 에너지원에 비해 효율이 그다지 좋지 못하고, 에너지를 내는 본연의 기능보다는 고급 요리 재료로 많이 사용된다.
 "헥사콰드뮴 주먹만한 세 덩어리 정도면 충분하지?" 김경수가 조용히 속삭였다.
 "하고도 남지." 역시 방정식이 조용히 대답했다.
 "우선 주문하자."
 "여기 헥사콰드뮴 정식 두개요."
 방정식이 승무원에게 주문한 지 딱 10분이 지나 김이 펄펄 나는 헥사콰드뮴 구이, 찜, 볶음 등의 요리를 조금씩 한 접시에 담은 먹음직스런 요리가 그들 앞에 대령하였다. 고급 여객선답게 학자 월급으로는 평소에는 구경도 하기 힘든 정도의 음식이다. 마치 요리에서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은 할 말을 잃고 요리만 한참 바라보았다.
 "정식아?"
 "왜?"
 "나 갑자기 배고프다."
 "....나도."
 "한 입씩만 먹자. 응?"
 사실, 방정식은 잠도 제대로 못 잤고, 아침밥도 안 먹었고, 빈속에 체질에 안 맞는 격한 운동(200m달리기)까지 해서 매우 배가 고팠다. 게다가 구경도 해 본 적 없는 고급 요리가 눈앞에 놓여 맛있는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이성과 욕망의 처절한 혈투를 그림으로 그리라면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갈등이 되었지만, 오호 통재라. 지금은 딱 점심시간이었다.
 "그....럴...까?"
 이성의 패배를 고하는 한마디였다.
 그리고 잠시 뒤.
 먹긴 먹었다. 먹어도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착찹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린 후에 남은 거라고는 겨우 두 덩어리. 하필 안 될 것이라는 확신도, 될 것이라는 확신도 할 수 없는 정말, 정말 애매한 양만 남은 것이다.
 "... 이제 어쩌지?"
 김경수가 김 서린 안경으로 한 때 탈출의 희망이었던 처참한 식사의 잔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전혀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 아닌 질문을 했다.
  "... 꺼억."
 포만감과 죄책감에 의해 7:3으로 대뇌를 분할 점령당한 방정식이 역시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
 "한 접시 더 시켜서 그걸로 해 볼까?" 김경수가 물었다.
 "여기 두 접시째부터는 돈 받는다." 방정식이 대답했다.
 "어디, 가격이.... 끄아악!" 김경수는 거의 뒤로 넘어질 만큼 놀랐다. 그들이 방금 전에 먹은 헥사콰드뮴 정식이 한 달 월급보다 비쌌다!
 "어쩔 수 없지. 이거라도 쓰자." 김경수가 남은 헥사콰드뮴 조각을 들고 일어섰다. ("이크, 학자복에 양념 튄다.") 방정식은 그 뒤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갔다.
 보통 행성간 여객선의 화장실은 (물론 지구인의 눈으로 볼 때) 엄청나게 넓다. 성별 구분이 없는 종족이 상당하기 때문에 남자, 여자 화장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며, 흐룽베리 행성의 주 종족인 거인족 보레스트 인을 제외하면 (평균 신장이 94.4m쯤 되고, 전쟁을 혐오하며 예술에 조예가 아주 깊은 평화적인 종족이지만, 그들의 함선 한 대의 전투력이 중견 행성의 1개 함선 군단이 출동해도 막지 못할 정도로 강력하다.) 우주 인구의 전체 신장 평균이 약 2.25m쯤 되므로 화장실 한 칸 한 칸을 크게 만들곤 한다.
 "좋아. 해 보자고."
 방정식은 웃옷을 접어 닫힌 변기 뚜껑에 올려놓고 주머니에서 검은색의 샤프펜슬 모양을 한 물건을 꺼냈다.
 사출기. 얼핏 듣기에는 플라스틱 성형 공업이 떠오르고, 얼핏 보기는에 흔한 필기구 모양을 한, 학자복과 함께 학자의 상징인 이 물건은, 정말 믿기 힘들지만, 자신의 생각을 실제 세계에 표현하는 기능, 즉 반응식과 에너지만 가지고도 반응을 일으킬 수 있게 한다!
 상당히 놀라운 기능을 가진 이 기계는 우주학자연맹의 1대 수장이자 스텔라 행성의 제2 집정관이었던 보르누이 메체르스가 발명했으며, 수식이나 표현을 공중에 쓸 수 있게 해 주는 렌더링 머신, 수식을 읽고 해석하는 인터프리터, 해석된 수식을 실행하는 익스큐터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사출기를 공중에 휘두르면, 렌더링 머신이 자기 부상 잉크를 생성해냄과 동시에 소량의 중력자를 공중에 뿌려 마치 판 위에 글씨를 쓰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며, 인터프리터는 사출기 끝부분의 움직임을 해석해 수식을 익스큐터에게 넘기며, 익스큐터는 이를 실행하는데, 익스큐터 부분의 매커니즘은 우주 전체에서 그것을 이해한  사람(또는 물건)을 일렬로 세우면 1km가 안 될 만큼 엄청나게 복잡하므로 생략하겠다.
 하지만 실행(익스큐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첫째, 사출기는 절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출기로 인해 만들어진 반응은 언제나 그 반응이 자연적으로 일어날 때보다 최소 2배에서 최대 2백배가 넘는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때로는 수백억 배의 에너지가 필요하기도 한다. 둘째, 수식은 완벽한 논리적 구조를 가질수록 실행 확률이 높아지지만, 완벽한 논리는 갖추었을 경우에도 수식을 쓰는 사람이 수식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쓴 경우에는 반응이 일어날 확률이 98%에서 2%로 급감하는데, 이 현상의 원인은 사출기 발명 이후 최대의 미스테리다.
 어쨌건 에너지를 희생해 반응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엄청난 이득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우주학자연맹과 우주 전체에서 학생을 받는 유일한 대학교인 은하대학교, 학자본부 "학계"가 개설되었으며, 학자가 그 어느때보다 촉망받는 직업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우주학자연맹 5대에 발생한 학자 대전쟁(흔히 "인문자연전쟁"으로 불린다.)으로 인해 학자들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8대 학자연맹장이 취임한 현재 사출기의 특허료로 간신히 연맹과 은하대학, 학계의 재정을 대고 있는 형편이다.
 "웜홀 방정식 잘 아냐?"
 김경수가 물었다.
 "이름 값도 못하면 안 되지."
 방정식은 대답하기가 무섭게 곧바로 엄청나게 긴 수식을 허공에 써 내려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약 3제곱미터의 평면이 사출기의 푸른 색 자기 부상 잉크로 꽉 차 갔다.
 갑자기 방정식이 쓰기를 멈추고 김경수에게 물었다.
 "에너지가 모자라는데, 어떡할까. 지속 시간을 줄일까, 아니면 크기를 줄일까?"
 "구체적으로 대 봐."
 "원형 기준으로 원래 크기가 4제곱미터라면 1제곱미터로 줄어들고, 원래 지속시간이 10초라면 2초로 줄어드는데?"
 "끄으응." 김경수가 오만상을 다 쓰며 신음 소리를 낸 뒤 말을 이었다..
 "1제곱미터로 하고 모양을 우리 몸 모양으로 하면 어떠냐? 가로 50센티 세로 2미터 이렇게."
 방정식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모양이 원형에서 벗어날수록 에너지가 많이 든다, 바보 같은 놈아. 그런 모양으로 하면 0.1초도 못 버틸 걸?"
 "끄으으으응." 김경수는 아까보다 조금 더 큰 신음소리를 내고는, 퍼뜩 무엇인가가 생각난 듯 재빨리 말했다.
 "아, 야! 그러고 보니까 곧 있으면 고속도로 들어간다! 엿되기 전에 빨리 해!"
 "뭘 허둥대. 뭐, 바로 뛰어들면 되니까 시간을 줄이자."
 하고는 방정식은 마지막 몇 줄을 덧붙인 뒤, 수식 끝에 점을 두 번 찍자, 양념된 헥사콰드뮴이 빠르게 분해되면서 밝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 때, 순간적으로 온 우주선이 덜컹거렸다.
 "뭐, 뭐야!" 방정식이 휘청거리며 말했다.
 "큰일났다! 고속도로 들어갔어!"
 "젠장! 웜홀 생기기 일보 직전인데! 되돌리지도 못한다고!"
 우주선은 좁은 터널을 빠져나가는 기차와 비슷한 소음을 내며 마구 흔들렸다. 이 난장판 중에서도 헥사콰드뮴 조각만은 서서히 분해되며, 마침내 웜홀 하나를 만들어냈다.
 웜홀. 사실 듣기에 꽤 웃긴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벌레 먹은 구멍이라는 이름이야 둘째치더라도 명색이 음의 에너지, 시공간 찢어 붙이기 등 별 이상한 이름을 한 이론들이 총동원되는 우주물리학의 총아이지만, 요즘들어 웜홀을 표현하는 매우 간결한 수식이 개발되면서 상당히 대중화되어 관련 법규가 우후죽순으로 은하중앙법정에서 통과되는 등, 내심 웜홀 이용을 독점해 물리학자 출장에 재정적 도움을 조금이라도 받고자 했던 학계의 반발을 살 만한 일이 꽤 많았다.
 한편 최근에 은하대학교 고급 화공학 시간에 학생 중 누군가가 학점 잘 안 주기로 유명한(그래서 화공과 학생의 공공의 적이 되어가는) 스푸르드 교수가 들어오는 문을 대기권 밖으로 통하는 웜홀에 이어놓아 스푸르드 교수를 단번에 우주로 보내버린 사건이 유명한데, 스푸르드 교수가 히나즈 행성 출신이라 다행스럽게도 아무 탈 없이 다시 대기권을 뚫고 들어와 지난 시간에 미처 다 끝내지 못한 고차원 전자교환반응의 응용문제 강의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주도 학생은 징계 신세를 면치 못했다.
 "웜홀 생겼다!" 방정식이 소리쳤다.
 "어떡해! 임마! 니가 고속도로에서는 열라 위험하다며!" 김경수가 외쳤다.
 "양자 요동 생길 확률 70배로 뛴다!"
 "그런 건 뛰고 나서 알려줘!" 김경수가 울부짖었다.
 "없어지겠다! 뛰어!"
 "아, 젠장!"
 그들은 간신히 웜홀이 닫히기 직전에 몸을 웜홀 안으로 집어넣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잠시 뒤, 그들 눈에 보인 것은, 학계 건물의 친숙한 광경이 아니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하얗고, 하얗고, 하얀, 평평한 벌판뿐이었다. 그들은 그 분위기에 위압되었는지, 아니면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사로잡혀서인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보같이 입을 벌리고 주변을 둘러보는 일 뿐이었다. 방정식은 이 곳을 알고 있었다. 분명히 알고 있었다. 심지어 한 번 와 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기억이 꿈처럼 멀어서 가물가물했다. 
 김경수와 얘기를 해 보려고 고개를 돌린 순간, 김경수는 그 곳에 이미 없었다.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방정식은 당황해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보았으나, 어디에도 김경수는 없었다.
 몹시 당황해서 옆을 바라 본 순간, 여자 하나가 5cm도 안 되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었다. 방정식은 기절할 만큼 놀랐다.
 "으아아악!" 그는 소리치며 나자빠졌다.
 그 여자는 그런 반응을 기대했다는 듯이 가볍게 웃으며 방정식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네."
 방정식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옷은 놀랍게도 지구인들의 옷이었으며, 머리카락은 허리를 넘을 만큼 길었고 무엇보다도,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얼마 정도였냐 하면, 아름다움에 감탄하기 이전에 섬뜩함마저 느껴질 만큼 완벽한 외모였다. 그 외모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인간, 다시 말해 일반적인 지적 생명체가 아님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방정식은 이 여자의 얼굴이 굉장히 낯설면서도 친숙하게 느껴졌다. 감히 말을 걸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의 위압감이 서려 있음과 동시에, 10년만에 본 친구의 얼굴처럼 반갑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경험을 예전에도 한 것 같다는 어렴풋한 기억이 났지만, 신기하게도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뭔가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았지만, 해야 할 말이 잘 떠오르지도 않았다.
 "누...누구시죠..?"
 방정식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 여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소를 입에 띄우며 천천히 걸어다녔다.
 "글쎄? 내가 누굴까?"
 그녀는 이유 모를 장난기를 잔뜩 얼굴에 머금은 채로 방정식에게 다가갔다.
 "신기하네, 진짜 기억 안 나?"
 방정식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정말?"
 그녀는 이제 거의 방정식과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왔다. 이번에도 방정식은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못 말리겠다. 그 때도 잘못 들어와서 기억 못 해 놓고, 이번에도 잘못 들어와서 기억 못 해? 넌 아직도 안 되나 봐."
 그녀는 방정식에게서 고개를 돌리더니 벌떡 일어나 벌판 저 너머로 걸어나갔다. 방정식은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녀의 이름을 물어야 한다. 왜 하필 이름을 들어야 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이런 기회는 정말 찾아오기 힘들 것이다. 방정식은 그녀에게 소리쳤다.
 "이름이, 이름이 뭐죠?"
 그 여자는 멈춰서서 방정식을 되돌아보았다. 그녀는 피식 웃더니, 돌아서서 다시 걸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 와서, 네가 내 이름을 기억해내면, 나도 내 이름을 말해줄게."
 방정식은 잠시 이 말도 안 되는 대답에 당황해서 잠시 멈칫거렸지만, 다음 순간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찾았다.
 "잠깐, 잠깐만요!"
 하지만 그녀는 어느 새 사라졌고, 흰 벌판에 생명체라고는 방정식 하나밖에 없었다. 방정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깨어 있으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결국 바닥에 무릎부터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방정식은 어딘지 모를 곳에서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김경수가 그를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방정식은 한참 동안 얼 빠진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보다 간신히 얘기를 꺼냈다.
 "너도...봤냐?"
 방정식이 김경수에게 물었다.
 "무슨 퓨레이 갔다 부은 것 처럼 하얀 데? 거기는 봤지."
 퓨레이는 베텔게우스 7행성인 주드라칸트의 주 생산품으로, 기름때 제거제 중에서는 거의 우주 최고의 성능을 자랑한다. 하지만 가격이 상당히 비싼 편이라 보통은 소매나 목 둘레 씻을 때만, 그것도 희석해 가며 아껴아껴 쓴다.
 "아니, 아니. 거기 말고. 무슨 여자 하나 못 봤어?"
 "개뿔. 여자는 무슨. 니 말대로 양자 요동인가 뭔가 때문에 생긴 장소 같던데 뭔 사람이 있겠냐."
 방정식은 잠시 생각했다.
 '꿈이었나? 그럴 수도 있지. 방금 전에 겪었는데 10년은 넘은 기억 같기도 하고...'
 방정식은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낸들 아냐." 김경수가 대답했다.
 주변은 온통 웅웅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언뜻 봐서는 퀴퀴한 창고 한 구석 같기도 했고, 여기저기서 김이 새어나오는 파이프들로 봐서 무슨 보일러실 같기도 했지만,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방정식이 고장난 듀피투츠(요리기구의 일종이다. 급속 튀김기.)를 구석으로 차 버리며 말했다.
 "그래. 습기 찬 건 질색이다."
 그들은 몇 마디 말을 중얼거리며 묵직한 철문을 힘껏 밀어 밖으로 나갔다. 나가는 순간 코에 느끼한 기름 냄새가 훅 불어왔다.
 "읍." 김경수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들은 잠시 옷소매로 코를 막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환풍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돌아가고(날개 사이로 간간히 우주 공간이 보였다.) 사방 팔방 구석구석에 기름때 안 낀 곳이 없는데다가 주방 도구와 음식 재료가 어지럽혀져 있는 것을 보니 어느 이동식 패스트푸드점의 주방이 분명했다.
 이동식 패스트푸드점은 120년 전쯤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사업 형태로, 점포 하나가 통째로 우주선이다. 이 행성 저 행성 옮겨다니며 장사하기도 하고, 우주공간에서 영업하기도 한다. 음식이 싼 것이 최대 장점인데, 싼 만큼 맛도 별로 없어 패티에 히나즈 행성에 굴러다니는 죽은 크림슨 소의 뇌를 섞는다는 괴소문도 있다.
 "운도 좋네. 우주공간 한복판으로 안 나가고 실내잖아?"
 "양자 요동 일어나도 영향 안 받는 웜홀 2차 조건에 이미 다 공기나 압력 우리한테 맞는 곳만 가도록 해 놨었어, 임마."
 "이제 보니 제법 철저한데?"
 "시끄러."
 갑자기 문이 열리고, 발자국 소리와 함께 중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야, 도대체. 주방에서 재료 가져가는 줄 내가 모를 줄...어?"
 그 말소리의 주인공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방정식을 바라보았다. 방정식도 상당히 놀란 표정이 되었다. 이 순간 제 3자가 된 김경수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멀뚱거리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김경수는 그 여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단발머리 위에 "미트라스"(우주 제 2의 이동식 패스트푸드 체인점) 라고 쓰인 모자를 쓰고, 안경에는 기름때가 잔뜩 묻었다. 손에는 뒤집개를 들었고, 앞치마를 입은 게 여기 직원 같아 보였다.
 '그런데 앞치마 속에 입은 게.... 설마?' 그가 이렇게 생각한 순간, 그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정식...선배?"
 "어, 어. 잘 지냈냐? 오랜만이네."
 김경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적어도 이 새끼만은 나하고 비슷한 처지(잘 아는 여자라고는 선배 한명이 다다.)일 줄 알았는데! 이 만리 타향까지 여자친구를 붙여 놓았다니, 오오, 이런 천하의 망할 놈을 봤나!
 "뭐야, 둘이 무슨 사이야? 썩 대답하지 못할까?" 김경수가 방정식에게 바짝 붙으며 추궁했다.
 "사이는 무슨, 학자복 위에 앞치마 입은 거 보면 모르냐. 지구 그것도 우리나라 출신 학자니까 알지, 자식아." 방정식이 김경수를 밀쳐내며 말했다.
 "아, 그게 그렇게 된 거였어? 말을 하지."
 "니가 얘기 할 틈이나 줬냐." 
 "어쨌든 인사는 해야지. 혹시 이름이? 난 수학과 김경수요." 김경수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생물학과 유나영이예요. 반가워요." 그들은 악수를 했다.
 "으읍." 김경수가 신음소리성이 짙은 숨소리를 냈다. 그가 마지막으로 '여성'의 손을 만져 본 것이 12년 전 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금 다른 이유도 있다. 유나영의 손에는 엄청난 양의 기름이 묻어 있었다. 좀 나중에 일어난 일이지만, 이 때 김경수의 손에 묻은 기름은 2개월이 지나서야 완전히 없어지게 된다.
 "그런데 선배님들 어떻게 여기 들어오셨죠? 분명히 아무도 안 들어갔는데?" 유나영이 물었다.
 "그게...." 방정식은 말꼬리를 흐리며 시선을 자연스럽게 왼쪽 세번째 선반의 반 쪽짜리 브로콜리로 돌렸다.
 유나영은 이를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학계에 널리 퍼진 소문 중 하나가 자기 눈 앞에서 재현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은하대학교 석사연구소 문학과와 사회과학과에서 공동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학계에는 약 104,771개의 소문이 돌고 있으며, 그 중 10,124개는 검증되었으며, 나머지 94,647개의 소문 중 66,419개는 검증이 도저히 불가능한 것들이다.
 예를 몇 개 들자면, 학계 구내 식당가의 인기 업소인 "블라디보츠"(면 요리 전문점)의 뒷문에 우주연맹 본부로 통하는 정부 웜홀이 있다는 소문이나, 학계와 은하대학교가 만나는 부분에 매우 큰 로비가 있는데, 그 곳의 분수대 중 제일 높은(약 40m) 분수인 "진리의 분수"(상당히 거창한 이름이다.) 꼭대기에 행성 탈출선의 스위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나, 학계 기숙사 주 전원 배선망 어딘가에(엄청나게 복잡한 미로. 몇 번의 사망 사고와 실종 사건이 일어나자 전기공학부 외에는 접근이 차단되었다.) 타임머신이 숨겨져 있다는 등의 소문들이다.
 이미 전에 검증된 소문이지만, 여러 번 인용되면서 유명세를 탄 소문 중에 이런 것도 있다. "물리학자가 이상한 곳에서 느닷없이 나타나서는, 어떻게 들어왔냐고 물었을 때 말꼬리를 흐린다면, 그건 분명히 불법 웜홀이다."
 유나영은 한 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방정식을 바라보았다.
 "알 만 하네요. 불법 웜..."
 "쉿! 누가 들을라! 벌금으로 내 월급 반절 날려먹으려고 작정했냐?" 방정식이 유나영의 입을 틀어막으며 소리쳤다.
 "뭐야, 우리 월급 반절이면 불법 웜홀 벌금 치고는 싸잖아? 쥐꼬리만한 우리 월급 반절이라봐야." 김경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얌마! 목소리가 커!" 방정식이 김경수에게도 소리쳤다.
 이 때 갑자기 유나영이 들어온 문 쪽에서 쾅 소리가 나며,
 "아~그게 그렇게 된 거였어?" 빈정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방정식과 김경수는 본능적으로 등뼈에 짜릿함을 느끼며 어깨를 움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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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사전으로 소설 쓰기 열라 힘들군요.

D26 배터리 갈 때 됐는데, 배터리 갈면 쓴 거 날아가지나 않을지.
분류 :
소설
조회 수 :
1014
등록일 :
2008.12.28
05:56:49 (*.1.244.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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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랑

2008.12.28
06:27:13
(*.236.233.212)
(전략)위한 설명서 스타일이네요. 어짜피 읽어보진 않았기 때문에 모릅니다.

똥똥배

2008.12.28
06:41:02
(*.22.20.158)
오우, 사인팽님 오랜만! 뭐하고 사셨어요?

포와로

2008.12.28
12:51:34
(*.199.35.51)
관능적

사인팽

2008.12.28
19:11:19
(*.1.244.172)
한 것도 없이 바쁘게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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