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내용을 기록하는 곳
음.. 이 꿈을 어떻게 전달해야 가감없이 내 기분을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어떤 상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주로 전날 봤던 책이 그러던데.. 당신은 좀 다를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나는 최근에 선현들이 끝 없이 고민했고, 그리고 예외없이 해결했던 난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죽는 것 말입니다.. 들으면 참 멋있는 사색 거리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음.. 나는 전날 봤던 책에 감화될만한 인간성은 가진 사람이고..
그래서 그런 것을 고민하더라도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요.
물론, 이 문제는 나 역시도 많은 선현들이 그랬던 것 처럼.. 그러니까.. 경험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게 될 거라고 생각은 합니다.
(이 부분에서, 왜인지 '피로 피를 씻는다.'는 고전적이고 멋진 구절을 인용하려고 했지만, 곧 그게 적당한 용법이 아닌 걸 알게 됐습니다.)
아무튼 죽으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니까요. 정답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해답은 될 수 있을테니까요.
그렇게 이 문제를 넘길 수도 있지만, 내가 제일 먼저 말했던 것 처럼 어떤 생각에 사로잡히면,
이미 그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어집니다. 스스로 기어 들어간게 아니라, 사로 잡힌 것이니까요.
그런 생각의 연장선의 하나가, 바로 일전에 올렸던 '부러진 날개'란 꿈 입니다. 그 꿈은 참.. 아무튼 슬펐기도 했습니다.
꿈이란.. 내가 아는 정보들을 상당히 멋있게 재구성해줘서, 기억력도 올려주고 스트레스도 없애주는 훌륭한 오락이지요.
그리고 때론 어떤 문제의.. ..가 되기도 합니다. 해답이 아니라, 정답으로써..
지금부터 내가 말할 꿈도 그것과 같아요. 그러니까, 이 꿈은 제가 생각할 때 정답에 가까운 결과인거죠.
꿈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나는 이 꿈에서 관찰자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청년 시점의 관찰자에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나는 청년은 아닙니다만, 청년의 눈으로 보고, 청년의 입으로 먹습니다.
그리고 청년의 손과 발로 움직입니다. 그렇게 나는 이들과 함께합니다. 음.. 이것 이상 잘 설명할 방법을 모르겠네요.
아래 서술에서는 편의상 청년이라 쓰겠지만, 사실은 이렇다는 점, 아무튼, 염두에 두는게 좋을 겁니다.
음.. 처음 이 꿈은 침대에서 시작합니다. 물론, 남녀 둘이서 껴앉고 있는 밤의 침대는 아니고,
그러니까.. 예쁘장한 소녀 하나가 침대에 누워있기는 한데, 그걸 보는 청년인 나는 방 문 앞에 서있죠.
나는 소녀를 깨우러 온 겁니다.
내가 소녀를 깨우면, 흔히들 가족이나, 가족 비슷한 우애 관계가 그러듯이, 우리는 상투적인 인사를 합니다.
'오늘만이라도 오래 푹 자면 안 될까?'같은 꿈이 몇몇 폭력과 함께 오가는 인사요. 그만큼 나와 소녀는 친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중요한 축제가 있는 날입니다. 밤에,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인거죠.
그리고 축제의 주연은 우리 모두이지만, 역시 이번 축제의 꽃은 소녀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마지않아 일어난 소녀는 욕탕으로 향하고, 나는 전에 없게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합니다.
그렇지만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나 혼자는 아닙니다. 여행 중 만난 몇몇 좋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줍니다.
이들 역시 축제의 주연들입니다. 나와, 그 소녀와 같죠. 그러니까.. 우리들 역시 가족이나,
최소한 그에 준하는 어떤 관계라는 말입니다.참 멋진 일 아닙니까?
물론,그렇다고 내가 이들과 침대에서 몸의 대화를 나눴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들 중엔 건강한 청년도 몇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몇 가지 친근한-조금 전에도 언급했던, 그런.-대화를 나누면, 어느새 소녀가 우리 사이에 부대껴 있습니다.
그렇게 귀가 트이고, 마음이 놓이는 평화로운 아침이 지나갑니다.
오후에는 나와 소녀가 마을을 거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러니까 우리에게 기회를 양보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아마도 오늘만큼은 그들 역시 소녀와 함께 하고 싶었을텐데.. 하지만, 나는 그 호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건, 그들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고, 그리고 내 마음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죠.
우리는 계속 마을을 거닙니다. 그 와중에 무시무시한 개-그는 흉포한 파수꾼입니다.-를 비롯하여,
우리 영주님의 사람 키만한 성-오늘 성대한 축제가 열릴 곳이죠.- 마을에 하나 뿐인 잡화점, 기타 등등..
그렇게 이제까지 계속 봐 왔던 낯익은 마을을 돌아봅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언제까지고 지켜보고 싶은 광경이네요.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다시 우리의 집-가족이 함께하는 곳-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늘을 보니 축제까지는 약간의 시간만 남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축제로 향할 준비를 해야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소녀는 무언가 정리할 시간이 갖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역시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또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집을 나섰습니다. 축제를 맞아 성대하게 꽃으로 수놓여진 대로 사이로,
우리는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행진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꾸 뒤를 보고 싶어 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소녀처럼요.
축제는 얄미울 정도로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축제가 즐겁지 않길 바랐습니다.
그렇다면, 조금은 이 순간이 더 천천히 갈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게 분할만큼 축제가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머리 위애 걸린 달리아가 땅과 수평에 놓였을 때, 약속한 시간이 왔습니다.
그래요.. 오늘 그는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소녀가 가야할 길..
(이 대목에 '태어난 곳', '왔던 곳'이 같은 더 적절한 표현이 있었던 것 같지만, 왠지 글로 옮기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 순간을 준비해 왔습니다만, 예상했던 것임에도 그것은.. (이 대목을 적당한 표현으로 옮기기가 어렵네요.)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소녀의 걸음도 결코 멈추는 일이 없었습니다.
많은 고함-격정적인 감정이 섞여 알아듣기 무척 어려운-과 욕설이 이 땅을 울렸고, 아마도 저 먼 네메시스까지 닿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들 중에 가장 슬픈 것이 누구인지 잘 알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울면서도 그녀를 토닥였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점점 희미해졌고, 이내 달리아조차 돌봐줄 수 없는 먼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아주 길었고, 이렇게 하나의 매듭이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끈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음을 말입니다.
...
이게 내가 꾼 꿈의 전말입니다.
그런데.. 적으면서 알게 된 것인데, 내가 중대한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당신도 잘 알겠지만, 꿈에서 느꼈던 감정은 깨어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그렇지만, 나는 꿈에서 일어나자 마자 가장 먼저 이걸 적었고, 이 감정을 최대한 생생하게 전달하려 했고,
그래서 되려 글을 쓰는데에 시간을 많이 낭비해버렸습니다. 이건 자충수였습니다.
음.. 좀 어처구니가 없군요. 사실 본래 전달하려 했던 감정은.. '일생을 하루로 제한하고, 나, 혹은 우리들이 모르거나, 알면서도 외면하고, 어떤 것-소설에서 뭐라고 하던데..-을 계기로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결국 헤어지게 된다.'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쓰다보니 정확도는 높아졌지만, 감정 전달은 오히려 많이 해쳐버린 느낌이네요.
그래도.. 지금 남아있는 아주 약간의 감정만으로도 나는 아주 기쁩니다. 그리고, 이 꿈을 꾼 게 나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