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내용을 기록하는 곳
반혼세계
서기이번에는 동화같은 꿈이군요. 이 꿈이 만화라면 판도라 하츠와 충사 사이 정도의 분위기겠네요.
꿈에서 나, 열 셋에서 열 여섯 사이정도 되는 안경잡이 독설가인 나에게는 활발한 형제가 한 명 있습니다.
그게 실제로 피를 나눈 형제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가족이란 이름에 부끄러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집은 부자도 아니었고, 하다못해 끼니 걱정 없는 평범한 가정도 아니었습니다만,
우리 둘은 정말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배우고 일하는 것은 남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내가 배우고 행하는 일은 남의 영혼을 다루는 일 입니다. 다들 강령술이나 반혼술 같은 것으로 아는 일이요.
하지만 아직 어렸던 우리 형제가 대단찮은 일을 다루는 일은 별로 없었고, 오늘까지만 해도 별로 기억나는 것 또한 없었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우리를 경외하고, 그만큼 거리를 둔 다는 것일까요.. 이 곳, 어느 곳에도 없는 건물 양식[1]을 가지고,
온갖 경이로운 것들을 다루는 이 학교에서 조차도 우리는 유리되어 존재하고만 있었습니다.
물론, 경이가 밥을 먹여주지는 않기 때문에, 그것은 아주 골치 아픈 제약이었습니다.
음.. 학교 이야기는 더 하고 싶지만, 이만하면 제가 대충 어떤 삶을 보냈는지 단편적이나마 알게 되셨겠죠?
그럼,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 겪은 일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의뢰는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어느정도로 굉장하냐면.. 평소에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아버지 외에도,
평생 활동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 없는 할아버지와, 아직 미숙한 우리 꼬마 둘 까지 동원될만한 굉장한 일이었습니다.
아마 이렇게 말해도 잘 모르시겠지만, 여튼 굉장한 일이란 것 만은 잘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제가 그만큼 이번 사건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도요.
이번에 우리가 한 젊은 부부에게서 부탁받은 일은, 우리보다 두 세살쯤 어린 여자애의 반혼에 관한 것입니다.
반혼.. 영혼을 다루는 일 중에서도 가장 어렵기 때문에, 부탁하는 사람도 적고, 돈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드는 일이죠.
음.. 자꾸 영혼 다루는데 돈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우리도 인간 아닙니까? 먹고는 살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오롯이 혼자 존재하는 열 평 남짓의 커다란 방. 여자애는 그 방 침대 위에 누워있었습니다.
이 애는 어떤 상태로 코마 상태에 빠졌고, 이미 현대 과학의 힘으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악화되어 있었어요.
왜 이 여자애가 이런 상태에 빠졌고, 우리는 왜 반혼술이란, 매우 위험하고 좀처럼 금기시 되는 일을 수락했는가..
그것에 대한 내용은 사실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이번 일을 수락했습니다.
반혼술.. 몇 번이나 강조했지만, 사람의 영혼이 오가는 매우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음.. 그것이 왜, 어떤 방식으로 힘든지는, 우리가 행한 일을 직접 보여드리는 것으로 대답하겠습니다.
반혼의 과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먼저, 대개의 육신은 영혼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작업 도중에는 우리 영혼을 다루는 사람들 중 하나가
반혼술의 대상이 되는 육신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본래 육체의 주인이었던 영혼은 잠시나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육체가 코마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영혼 역시 잠자듯 가만히 누워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영혼을 이끌어, 스스로 존재하는 자에게 데려갑니다.
그리고.. 그 존재에게, 우리가 이끈 영혼을 변호하는 것이, 바로 반혼술인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의 실수만 있어도 영혼의 분리는 실패하고, 혹은 강령 도중에 술사가 죽기도 하며,
무엇보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에게의 변호가 쉽지 않은 것이, 바로 반혼술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음.. 이번에 여자애의 육신 안에 들어간 것은 나 혹은 형제입니다.
그리고, 영혼을 이끌고 변호한 것 또한 나 혹은 형제입니다.
굳이 이런 모호한 표현을 쓴 것은.. 객체가 나였는지 형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양 쪽이 겪었던 일을 모두 지켜봤다는 것입니다.
나, 혹은 형제는 다행히 별 탈 없이 영혼을 이끄는 일 까지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존재하는 자를 설득하는 일 만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일을 더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납득시켜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아는 자가 객관적으로 내린 결정을 뒤집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나, 혹은 형제는 처음 대면하는 그 존재와의 만남에서조차 전혀 쪼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자애를 살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주 열심히 여자애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변호했습니다.
날아오른 새가 추락할큼 오랜 시간이 지나, 마침내 신이 입을 열었습니다.
"알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 혹은 형제는 본래의 육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자애의 영혼은 돌아왔으나, 나 혹은 형제의 영혼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자애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돌아온 것에 몹시 기뻐하고 있었고, 그렇기 떄문에 우리는 슬픔을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나 혹은 형제가 단지 깊이 잠들었다고 거짓말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겪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놀라운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깊은 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여자애가 일어나 우리 가족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나 혹은 형제는 그 이유를 어림짐작 할 수 있었습니다.
"---(나 혹은 형제의 이름)."
왜냐하면.. 스스로 존재하는 자는 우리의 방식대로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애가 나 혹은 형제로써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우리 가족은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육신에 두 영혼이 존재하게 된 것이죠.
이것이 두 영혼이 합혼된 것인지, 아니면 별개의 영혼으로 존재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나 혹은 형제가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 혹은 형제는 육신이 불안했기 때문인지, 계속 신체에 변형이 왔습니다.
아마 신체 하나에 영혼이 둘, 그것도 성별이 다른 영혼이 둘이나 존재하기 때문에, 신체에 변형이 오는 것 같습니다.
한 번은 할아버지의 얼굴로 변하기 까지 했으니까, 대충 얼마나 불안했는지 당신도 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내 안정기를 거쳐, 육신은 짦은 머리의 활달한 소녀로 고정되어 갔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 나 혹은 그 형제가 앞으로 두 명으로써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재밌으셨나요? 이것이 제가 오늘 겪은 일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꿈에서 깨기 직전, 혹은 깨어난 직후 나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 혹은 형제가 이 여자애와 맺어질 수도 있겠구나.'
'나 혹은 형제가 냉동 보존했던 옛 육신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어디까지가 정말로 이뤄진, 혹은 이뤄질듯한 미래인지, 어디까지가 내 상상인지는 잘 구분되지 않습니다.
꿈과 현실의 경계란, 때론 놀랄만큼 모호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일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 정도는 온존히 내 것으로 할 수 있겠지요.
(그럼.. 어서 즐거운 고민을 하러, 그리고 하루를 시작하러 가야겠네요. 한시 사십분의 늦은 시각이지만.
다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1]도도 세계의 건물 양식. 왜 이 건물 양식이 나왔는지는 모른다. 최근에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