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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발의 개인 게시판

한 n년만 젊었으면 만화로 그렸을텐데

귀찮고 품이 많이 들어서 그냥 글로 씁니다.

 

여름이 끝나가고 날씨가 풀리니 슬슬 오토바이 생각이 다시 났습니다.

마음 먹으면(마음 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어디든(이륜차 출입금지인 도로는 제외하고) 갈 수 있다는 자유,

타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바람 맞으면서 타는 재미...

 

아무래도 지나간 과거는 미화된다고

1년의 반 이상이 눈 비 황사 등인 모진 한국의 날씨,

가다서다 하는 시내 구간에서의 짜증나는 클러치 변속,

난폭운전하는 차들과 비비면서 느끼는 스트레스들은 까먹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역시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은 전부 바보가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침을 흘리고 보니 2종 소형 면허가 취득하고 싶었습니다.

※ 잠깐상식: 배기량 125cc 미만의 오토바이(보통의 배달용 오토바이)는 1종 보통 면허로 운전이 가능하지만

125cc 이상의 오토바이는 2종 소형 면허를 구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2종 소형 면허를 취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종 소형 면허를 취득하는 방법은 돈이 많이 드는 방법과 적게 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돈이 적게 드는 방법부터 설명하면 운전면허 시험장에 가서 몇 번 박치기를 하며 따는 방법입니다.

돈이 많이 드는 방법은 사설 운전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시험을 봐서 따는 방법입니다.

후자의 방법은 소위 "면허를 산다"고 합니다.

직장인이기에 시간이 금이라 평일에 시간을 마음대로 내기가 불가능하고

아무래도 빨리 따고 잊어버리고 싶기에 학원에 가서 면허를 사기로 합니다.

 

학원에서 피같은 돈 40만원을 내고 결제를 합니다.

금요일 연차를 쓰고 학과교육 3시간, 기능교육 4시간을 받습니다.

기능교육은 토탈 10시간을 받아야 해서 금요일 4시간, 토요일 3시간, 일요일 3시간 후 일요일에 시험을 보기로 했습니다.

 

학과교육을 들으러 가니 형식상 들으러 가는 것이라고 하고, 일반 보통면허 교육생들과 같은 교육을 받습니다.

교육이라고 해봤자 동영상을 틀어주는 것이 끝이고 이륜차 관련 교육은 일절 없습니다.

핸드폰을 끼적거리며 1교시를 흘려들으니 슬슬 점심시간이라 배가 고픕니다.

2교시는 지문만 찍고 막국수를 사먹으러 가는 상상을 해봅니다.

때는 9월 초. 가을이지만 여전히 햇빛이 뜨겁습니다.

지문을 찍고 근처의 막국수집으로 가서 점심을 해결할 겸 막국수를 먹는 상상을 합니다.

원래 맛집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교육을 째고 먹는 막국수라

상상 속의 막국수는 엄청나게 맛있었습니다.

2교시까지는 동영상을 틀어줬는데 3교시에는 강의실 불을 켜고 시험문제를 푸네요.

2교시가 아닌 3교시에 막국수 먹으러 가는 상상을 했으면 불편할 뻔 했습니다.

 

즐거운 상상이 끝나고 기능교육을 들으러 갑니다.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간단히 교육을 받습니다.

강사가 "하루에 4시간 탈 수 있겠어요?" 하고 겁을 줍니다.

잔뜩 쫄아 있는 상태로 간단한 조작법을 익힙니다.

클러치, 브레이크와 스로틀은 쓰지 말고, 핸들링으로만 코스를 돌라고 가르쳐주고

핸들링을 할 때는 어느정도 몸을 숙이라고 알려 줍니다.

그 후는 뭔가 강사가 맨투맨으로 가르쳐 주고 그런 건 없고 알아서 코스 돌도록 뺑뻉이 시킵니다.

아무것도 안 가르쳐 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코스를 돌면 자꾸 탈선합니다.

굴절 코스 한가운데에 스티로폼 쪼가리들이 놓여 있어서 그걸 피하느라 자꾸 탈선해서

첫번째 시간이 끝난 뒤 코스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려고 하니 강사가 다가와서

그걸 밟지 말고 돌으라고 일부러 놔둔 거니 치우지 말라고 합니다.

과연 그걸 안 밟고 스티로폼 쪼가리가 없는 쪽으로 코스를 잡으니 탈선하지 않고 코스를 돌 수 있었습니다.

효과가 좋은 방법이긴 한데 그걸 말로 좀 해줬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코스를 돌고 돌고 계속 돌고...

첫째날 코스를 돌면서 꼭 내일은 생수와 양갱을 들고 와서 수분과 에너지를 보충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햇빛은 뜨겁고 지루하지만 보험료도 내지 않고 다른 차와 사고가 날 걱정 없이

빙글빙글 오토바이를 타는 건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힘들었던 점은 오후 5시쯤 되니 학원 옆의 횟집에서 슬슬 영업 준비를 하면서

스끼다시로 꽁치를 굽는지 생선 굽는 냄새가 솔솔 나서 괴로웠습니다.

 

둘째날도 코스를 돌았습니다.

둘째날은 제대로 생수와 양갱을 가져가서 먹었습니다.

첫째날은 4시간 타고 둘쨰날은 3시간 탔는데 왜인지 둘째날이 더 힘들었습니다.

 

셋째날에는 강사가 바뀌었는데

왜인지 강사가 몸을 숙이지 말고 타라고 첫째날 강사가 알려준 것과 반대로 알려줬습니다.

그런데 첫째날 강사가 가르쳐 주면서

"제가 가르쳐드린대로 타면 다른 사람이, 동호회나 친구가 '야 너 왜 그렇게 타?' 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은 잘 타는 사람들이거나 다른 기종의 오토바이로 시험을 본 사람들이라

저희 학원이랑은 다를 수 있어요. 그런 거에 휘둘리지 말고 제가 가르쳐드린 대로만 타시면 되고

뭐 인터넷에서 보고 그런 것들은 싹 잊어버리시길 바랍니다."

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아서 무시하고 첫째날 강사가 알려준 대로 탔습니다.

 

오전에 기능교육을 모두 끝마치고 오후에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한 15명? 20명정도가 모여서 시험을 봤는데 재수 없게 제가 가장 마지막 번호였습니다.

운전면허 시험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앞 차례 사람들이 하나 하나 합격하는데

내 차례가 다가오는 그 긴장감...

왜인지 멘탈이 나가서 코스를 끝까지 다 못 돌고 중도 포기한 아저씨를 제외하고 다들 무리 없이 합격하였는데

결국 제 차례가 됐습니다.

굴절 코스를 도는데 갑자기 오토바이가 생각보다 많이 기울길래 순간적으로 발이 나가서 땅을 딛어 버렸습니다.

표정이 울먹울먹한 카이지 표정이 되면서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멘탈을 다잡고 코스를 끝까지 돌았습니다.

다행히 추가로 감점된 부분은 없어서 무사히 합격점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시험이 모두 끝나고 접수할 때는 대기 번호의 역순이었는지

제가 가장 먼저 접수하고 홀가분하게 집으로 갔습니다.

3일 연속 오토바이를 땡볕에서 타서 그런지 끝나고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는데

팔을 온탕 안에 넣으면 엄청나게 쓰라려서 냉탕 위주로 목욕을 했습니다.

보니까 팔이 엄청나게 탔는데 보호장구를 차서 그런지 굉장히 웃긴 모양으로 탔습니다...

뭐 좀있으면 괜찮아지겄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탄 자국이 남아있고

심하게 탄 곳은 껍질이 벗겨져서 징그럽게 되었습니다.

야외 활동을 많이 할 때는 가을이라고 방심하지 말고 꼭 선크림을 바릅시다.

 

여튼 그렇게 2종 소형 면허 취득을 위한 여정이 끝났습니다.

짧고 즐거운 과정이었고 오토바이를 실컷 탈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또 오토바이를 사고, 또 즐거운 만큼 괴로움을 느끼고 언젠가는 떠나보내겠죠.

비단 오토바이 뿐만 아니라 삶의 많은 것들이 그렇게 오고 가지 싶습니다.

분류 :
오토바이
조회 수 :
35
등록일 :
2023.09.21
10:26:13 (*.168.186.88)
엮인글 :
게시글 주소 :
https://hondoom.com/zbxe/index.php?mid=noru&document_srl=822238

'4' 댓글

장펭돌

2023.09.21
10:56:42
(*.250.113.47)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두근거리죠. 안라 하세요!

노루발

2023.09.21
16:06:49
(*.168.186.88)

감사합니다. 아직 오토바이는 안 샀지만 조심조심 타고 다니겠습니다.

흑곰

2023.09.22
02:04:25
(*.235.7.59)

원트 합격 축하드립니다. 운전면허 여러번 실패한 경험자로 존경을 드리겠습니다

노루발

2023.09.22
07:50:31
(*.39.24.207)

제 운전면허 취득에는 슬픈전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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